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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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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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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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참[抱槧]  연분(鉛粉)과 목간(木簡)을 손에 쥔다는 ‘악연포참(握鉛抱槧)’의 준말로, 열심히 베껴 쓰고 교감(校勘)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말이다.

포참군[鮑參軍]  포 참군은 남조 송(南朝宋) 때에 형주 참군(荊州參軍)을 지낸 시인 포조(鮑照)를 이르는데, 두보(杜甫)의 억이백시(憶李白詩)에 “시문이 청신하기는 유 개부 같고 뛰어나기는 포 참군 같았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라고 하였다.

포철[餔歠]  포철은 술지게미를 먹고 밑바닥에 남은 묽은 술까지 마신다는 뜻이다. 굴원이 소인의 참소에 의해 쫓겨나서 초췌한 몰골로 강담(江潭)에서 읊조리며 노닐 적에 한 어부(漁父)가 굴원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굴원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기 때문에 내침을 받은 것이다.”고 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취했으면, 어찌 그 술지게미를 먹고 남은 묽은 술까지 마시지 않고서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내침을 받는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굴원이 다시 말하기를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그 어부가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면서 가버렸다는 데서 온 말이다. <楚辭 漁父辭>

포초[鮑焦]  춘추 말 은사(隱士)로 청렴결백하고 근검절약한 행동으로 이름이 있었다. 그는 항상 땔나무를 등에 짊어지고 다녔으며 도토리나 밤을 주어 허기를 채웠다. 그는 세상의 도가 무너져 암흑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자나 제후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했다. 우연히 만난 자공(子貢)이 ‘주나라에 불만이 있다면 주나라를 떠나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비난을 받자 ‘현인은 쉽게 부끄러워하고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라고 말하고 그 즉시 나무를 부등켜안고 음식을 끊어 죽었다.

포초고하상[鮑焦槁河上]  포초는 주(周) 나라의 은사(隱士)이다. 직접 농사를 지어먹고 살면서 아내가 지어 준 옷이 아니면 입지를 않았는데, 언젠가 산속에서 배가 고파 대추를 따먹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대추도 그대가 심은 것인가?’ 하고 힐문을 하자 마침내 구토를 하며 먹지 않고 말라죽었다 한다. <風俗通 愆禮·莊子 盜跖>

포초래[蒲梢來]  처음에 무제가 점을 치니 신마(神馬)가 서북쪽에서 온다 하였는데, 뒤에 대완국(大宛國)을 쳐서 천리마인 포초천마(蒲梢天馬)를 얻고는 노래를 지어 “서극에서 천마가 옴이여 만리 먼 길을 거쳐 덕이 있는 이에게 돌아왔네.[天馬來兮從西極 經萬里兮歸有德]”라고 하였다. <史記 樂志·大宛列傳>

포취만거[鮑臭滿車]  진시황이 동순(東巡) 하다가 중도에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죽었는데, 따라갔던 그의 작은 아들 호해(胡亥)가 음모(陰謀)를 꾸미느라고 서울에 가기까지 상사(喪事)를 비밀에 붙였는데, 시체의 썩는 냄새가 나므로 감추기 위하여 수레에 냄새 많이 나는 포어(鮑魚)를 실어서 시체 냄새 나는 줄을 모르도록 하였다.

포취만거중[鮑臭滿車中]  진 시황은 방사(方士)의 말을 듣고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하여 동남(童男)·동녀(童女)를 삼신산(三神山)에 보냈으나, 즉위한 지 37년 7월 외유(外遊) 길에 죽었다. 이때 수행한 간신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는 상(喪)을 발표하지 않고 거짓 조칙(詔勅)을 꾸며 장자(長子) 부소(扶蘇)를 죽이고 차자 호해(胡亥)를 태자(太子)로 세운 다음 돌아왔는데,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하여 정어리[鮑魚] 한 섬을 수레에 실어 그 냄새인 것처럼 꾸몄다. <史記 秦始皇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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