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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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칠교[七校] 한 무제(漢武帝)가 백월(白粤)을 평정하고 나서 증설한 일곱 종류의 무관(武官) 교위(校尉)를 이른다. 곧 중루(中壘)·둔기(屯騎)·보병(步兵)·월기(越騎)·장수(長水)·석성(射聲)·호분(虎賁)등이다.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 “무제가 백월을 평정하여 안으로 일곱 교위를 늘렸다.[武帝平百粤, 內增七校]”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안사고(顔師古)는 “백관표에는 무릇 중루, 둔기, 보병, 월기, 장수, 호기, 사성, 호분이라는 여덟 교위가 있는데, 호기는 늘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여기에서는 일곱이라고 한 것이다.[百官表: 中壘, 屯騎, 步兵, 越騎, 長水, 胡騎, 射聲, 虎賁, 凡八校尉. 胡騎不常置, 故此言七也.]”라고 주석을 달았다. 교위(校尉)는 한나라 군대 관직의 명칭이며 대략 장군 다음가는 관직이었다.
❏ 칠국[七國] 오초(吳楚) 칠국의 란을 말한다. 전한의 6대 황제인 경제(景帝) 때인 기원전 154년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주도한 반란. 칠국이란 오왕 외에 초왕(楚王) 유무(劉戊), 교서왕(膠西王) 유앙(劉卬), 교동왕(膠東王) 유웅거(劉熊渠), 치천왕(淄川王) 유현(劉賢), 제남왕(濟南王) 유벽광(劉辟光), 조왕(趙王) 유수(劉遂) 등을 말한다. 경제가 즉위하자 법가인 조착(鼂錯)을 기용하여 제후들의 봉지를 줄이려고 하자 칠왕이 령에 따르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조정은 주아부(周亞夫), 란포(欒布), 두영(竇嬰) 등의 장군을 보내어 진압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경제는 조착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하고 칠국의 제후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그 마저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오초(吳楚) 연합군은 공세를 강화하여 지금의 안휘성 영성(永城) 북서 쪽의 극벽(棘壁)이란 곳에서 양나라 군사를 대파했다. 그러나 오초 반란군도 양나라의 도성인 수양성(睢陽城)은 함락시키지 못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했다. 오초 연합군이 양나라의 수양성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한나라 조정은 주아부를 태위로 삼아 토벌군을 출동시켰다. 주아부는 토벌군을 이끌고 지금의 산동성과 하남성의 경계에 있던 전략상의 요충지인 창읍(昌邑)으로 들어가 오초 연합군이 본국과의 연락로를 끊었다. 반란군이 창읍으로 달려와 토벌군을 공격했지만 주아부는 대응하지 않고 지구전을 벌렸다. 오초 반란군의 보급을 차단하고 있었음으로 시간이 지나면 식량이 떨어져 반란군은 곤경에 빠뜨리고자 함이었다. 주아부의 생각대로 이윽고 반란군은 식량이 떨어져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한 장병들이 잇달아 달아났다. 주아부가 창읍의 성에서 나와 반란군의 본군을 공격했다. 오왕은 친위대만을 데리고 달아났고 초왕 유무(劉戊)는 자살하고 말았다. 한편 교서, 교동, 치천, 제남의 왕들은 연합하여 오초에 호응하려고 했으나 제남왕이 중도에 마음을 바꿔 반란군에서 이탈하자 세 왕의 연합군이 그 도성인 임치성을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남왕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싸움은 교착상태로 빠졌다. 그 사이 오초 연합군이 주아부의 토벌군에 패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세 왕들은 임치성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철수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토벌군이 추격하자 세 왕은 모두 자살했다. 한편 조왕 유수는 한단성(邯鄲城)에서 농성하며 저항했지만 한나라 장군 역기(酈寄)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 역시 자살하고 말았다. 창읍에서 달아나 장강을 도하하여 오나라 본국으로 들어간 오왕은 그의 요청에 응하여 출동한 동월군(東越軍)의 마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는 동월왕은 반란군에게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한나라 조정과 내통하고 있던 상태였다. 동월군은 오왕을 잡아서 죽이고 그 목을 한나라 조정으로 보냈다. 이윽고 오초칠국의 란은 조왕이 한단성에서 농성하다 자살한 시점을 그 끝으로 본다면 10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 칠귀[七鬼] 포박자(抱朴子) 지진(地眞)의 “신명(神明)을 통하려 한다면 마땅히 금(金)·수(水)의 형체가 나눠져야 한다. 형체가 나눠지면 자기 몸의 삼혼 칠백(三魂七魄)을 절로 볼 것이다.”라고 한데서 나온 것이다.
❏ 칠귀[七貴] 한(漢) 나라 때 외척(外戚) 및 귀족으로 권세를 누린 칠성(七姓). 곧 여씨(呂氏)·곽씨(霍氏)·상관씨(上官氏)·왕씨(王氏)·조씨(趙氏)·정씨(丁氏)·부씨(傅氏)들을 말한다. <小學紺珠 氏族 七貴>
❏ 칠규혼돈착[七竅混沌鑿] 혼돈은 중앙의 신(神)이었는데, 남해의 신인 숙(儵)과 북해의 신인 홀(忽)이 그를 위하여 보고 듣게 하려고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7개의 구멍을 뚫었다. <莊子 應帝王>
❏ 칠금[七擒] 제갈량이 위(魏)를 치고자 출사하기 전에 뒷 염려를 없애기 위하여 먼저 남만(南蠻)을 쳐 그 왕 맹확(孟穫)을 사로잡았다가 그가 열복(悅服)할 때까지 도로 놓아주기를 무릇 일곱 번 했으니,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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