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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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최저[崔杼]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46년에 죽었다. 강성(姜姓)으로 씨(氏)는 최(崔)이고 이름은 저(杼)이다. 제나라 공족 출신으로 식읍이 최읍(崔邑)이었기 때문에 씨로 삼았다. 제영공 8년 기원전 574년 대부 고약(高弱)이 로(盧)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최저가 영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반란을 진압했다. 그 공으로 최저는 경(卿)에 임명되었다. 영공이 태자 광(光)을 폐하고 공자아(公子牙)를 새로운 태자로 세웠다. 이윽고 영공이 죽자 최저는 공자아를 죽이고 태자광을 불러들여 제나라 군주로 앉혔다. 이가 제장공(齊庄公)이다. 이 공으로 해서 최저는 제나라의 정경(正卿)이 되었다. 후에 장공이 자기의 처와 사통하자 시해하고 장공의 동생 저구(杵臼)를 세웠다. 이가 제경공(齊景公)이다. 최저는 스스로 제나라의 우상(右相)이 되고 경봉은 좌상(左相)이 되어 제나라의 국정을 전단했다. 제경공 2년 기원전 546년 최씨 집안에 난이 일어나자 그 틈을 타서 경봉이 최씨들을 멸족시켰다. 최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호는 무자(武子)이다.
❏ 최전[崔澱] 조선조 명종~선조 연간의 문인(文人). 율곡(栗谷)의 문인으로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했으며 저서로 양포유고(楊浦遺稿)가 있다.
❏ 최제수인[榱題數仞] 고대 광실(高臺廣室)의 뜻으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최제는 집 서까래머리라는 뜻으로 맹자(孟子) 진심 하에 “당(堂)의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고 서까래머리가 두어 자나 나오는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겠다.” 한 데서 온 말이다.
❏ 최졸옹[崔拙翁] 졸옹은 최해(崔瀣)의 호.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고도 한다.
❏ 최중령[崔中令] 최충(崔冲). 그는 현종(顯宗) 때로부터 문종(文宗) 때까지 문(文)·무(武)의 큰 공으로 중서문하성령(中書門下省令)이 되고, 아들 유선(惟善)이 중서령(中書令), 유길(惟吉)은 상서령(尙書令)이 되어, 왕이 베푸는 국로연(國老宴)에 두 아들이 아버지를 부액(扶掖)하고 참예하니, 희한한 성사(聖事)라 일렀다. <高麗史 崔冲傳>
❏ 최최[崔崔] 산이 우뚝하게 높은 모양, 높고 큰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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