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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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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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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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유적[李陵遺迹] 이릉(李陵)은 한() 나라 장수로 흉노(凶奴)와 싸우다가 항복하였는데 그의 친구 소무(蘇武)가 흉노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올 때에 서로 하양(河梁)에서 작별하면서 시를 지었다.

이릉지화[李陵之禍] 기원전 88년 한무제(漢武帝) 2년에 기도위(騎都衛)였던 이릉(李陵)이 흉노를 정벌하러 출정했다가 준계산(浚稽山)에 이르렀을 때 한나라 군사들보다 몇 배나 많은 흉노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었으나 끝까지 항전하다 결국은 힘이 다하여 흉노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한무제가 중국에 남아 있던 이릉의 가족을 잡아들여 죽이려고 하자 사마천이 나서 이릉을 변호했다. 이에 한무제가 노하여 사마천을 하옥시키고 궁형에 처했다. 이 일에 대해 사마천의 심경을 자세하게 토로한 글이 한서의 사마천열전 중 보임안서(報任安書)에 실려있다.

이릉환[李陵弮] 이릉은 한 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으로, 활을 아주 잘 쏘았는데,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흉노와 싸우다가 화살이 다 떨어져서 항복하였다. <漢書 卷五十四 李廣列傳>

이리[涖涖] 여울을 흐르는 물 소리.

이리간[伊里干] 원나라에서 전래된 말로 취락(聚落)이란 뜻. 충렬왕(忠烈王) 때 응방사(鷹坊使) 윤수(尹秀)가 원나라에 청하여 떠돌이 백성을 모아 응방의 일을 하게 하면서 이를 이리간이라 하였다. 후에는 압록강 연변에 이리간을 설치하여 원에 조공(朝貢)하러 가는 사신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립[而立] 30. 자립하다. 학문이나 수양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사회적으로 자립한다는 뜻. 학문에 기초를 세우다, 주견을 세우다, 확고한 가치관이 서다. 논어(論語)서른에 흔들림이 없었다.[三十而立]”하였다. 31세에서 39세까지를 입일(入一), 入二, 入三, 入九하는 식으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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