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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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응룡[應龍] 날개가 있으나 뿔이 없다는 용이다. 응룡이 우임금을 위해 땅에 금을 그으며 바다로 들어가니, 우임금이 수맥을 다스렸다 한다.
❏ 응류[應劉]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의 왕찬(王粲)·공융(孔融) 등과 함께 건안 칠자(建安七子)로서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던 응탕(應瑒)·유정(劉楨)을 합칭한 말이다.
❏ 응묘개진등암낭[應昴豈盡登巖廊] 재상(宰相)이 될 자질을 타고난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승상 소하(蕭何)가 묘성(昴星)의 기운을 받고서 태어났다고 한다. <初學記 卷1 注>
❏ 응문[膺門] 용문(龍門)과 같은 말이다. 이응(李膺)은 동한(東漢) 양성(襄城) 사람으로, 자는 원례(元禮)이다. 풍재(風裁)가 준정(峻整)하여 ‘천하의 모해(模楷) 이원례’라는 말이 있었고, 선비가 용접(容接)을 입은 자를 ‘용문(龍門)에 올랐다.’고 하였다.
❏ 응문[應門] 지금의 산서성 북부지방의 대동 일대를 말한다.
❏ 응방[應榜] 과시(科試)에 급제한 자의 명단을 발표한 뒤에 임금이 급제자에게 사개(賜蓋)·사화(賜花)하고 정희(呈戱)하는 등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이른다.
❏ 응벽지[凝碧池]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안녹산이 대궐을 범하자 왕유(王維) 등 몇 사람이 적당에 의해 승사(僧寺)에 구류되었다. 하루는 적당들이 응벽지에서 회음(會飮)하는데 이원제자(梨園弟子) 수백 명을 시켜 풍악을 울리게 했다. 왕유가 듣고 ‘마음 상할사 만호에 야연만 끼었으니, 백관이 언제나 다시 임금을 뵙게 될꼬. 깊은 궁 안에 느티나무 잎 지는데, 응벽지 위에선 풍악 소리 나누나.[萬戶傷心生野煙 百官何日再朝天 秋槐落葉深宮裏裡 凝碧池頭奏管絃]’라고 하는 시를 지어 벽(壁)에 써 놓았다. 적당이 평정된 뒤에 왕 유는 이 시로 말미암아 견책을 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 응빙초화[凝氷焦火]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붙따르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인정, 즉 염량세태(炎涼世熊)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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