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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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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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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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宵盰] 임금이 정치에 부지런하여 밤중에 일어나 옷을 입고 때가 늦어서야 조반을 먹는다는[宵衣旰食] 말이다.

소한린호묘[蕭閒早已隣湖泖] 소한은 원() 나라 때의 문인화가인 예찬(倪瓚)의 관명(館名)이고, 호묘(湖泖)는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삼묘호(三泖湖)를 가리킨 말로, 즉 예찬이 이 삼묘호 가에 은거하면서 풍류를 즐겼던 것을 이른 말이다.

소한유난쇠[所恨幽蘭衰] 자기가 가진 좋은 경륜(經綸)이 임금에게 쓰이기를 애원하는 말이다. 굴원(屈原)의 이소경에 그윽한 난초를 두르고서 기다리며 서성댄다[結幽蘭而延佇]”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소한화[消恨花] 유사(遺事)처음에 금원(禁苑) 안에 천엽도(千葉桃)가 있어 꽃이 만발하자 명황이 귀비와 함께 날마다 그 밑에 앉아 잔치했다. 임금이 원추리꽃[萱花]만 근심을 잊게 할 뿐 아니라 이 꽃도 한을 해소시켜 준다.’라 했다.”고 하였다.

소해[少海] 태자(太子)를 가리킨다. 천자(天子)를 대해(大海)에다 비유하므로 태자를 소해라고 칭하는 것이다. 해록쇄사(海錄碎事)천자는 대해(大海)에 비하고, 태자는 소해에 비한다.”라 하였다.

소해가[少海歌] () 나라 때 오()의 회계(會稽)에 살았던 은사(隱士) 하통(夏統)이 평소 굳은 지조로 벼슬을 거절하고 은거하였는데, 그가 한번은 병든 모친의 약을 구하기 위해 낙양(洛陽)을 갔던 바, 이때 그의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본 태위(太尉) 가충(賈充)이 그를 괴이하게 여겨 오()의 지방에 관한 풍속 등 여러 가지를 묻고, 이어서 그 지방에 관한 가곡(歌曲)을 지어 부를 수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오자서(伍子胥)가 오왕(吳王)을 간()하였으나 말은 쓰여지지 않고 도리어 죽임을 당하여 시체가 바다에 던져졌기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충렬(忠烈)을 가슴 아프게 여기므로, 내가 소해창(少海唱)을 지었으니, 지금 노래를 하겠다.”하고는 발을 구르며 힘차게 노래를 하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말하기를 소해창을 들으니 오자서·굴원(屈原)이 바로 곁에 서 있는 것 같았다.”하였고, 가충은 말하기를 이 오아(吳兒)는 바로 목인석심(木人石心)이다.”며 감탄했던 고사가 있다. <晋書 卷九十四> 목인석심(木人石心)은 곧 굳은 절조를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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