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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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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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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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小坡] 소동파(蘇東坡)의 막내 아들 과()의 별칭이다.

소파오가[笑破吳家] 서시(西施)는 춘추(春秋) 때 월() 나라 미녀의 이름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패한 뒤에, 그의 모신(謀臣) 범여(范蠡)가 서시를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자, 마침내 오 나라의 정사가 어지럽게 되어서 멸망하기까지에 이른 사실(史實)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소평[少平] 소평은 후한 때의 직신 동선(董宣)의 자인데, 광무제(光武帝) 때에 호양공주(湖陽公主)의 종[]이 사람을 죽였으므로, 당시 낙양령(洛陽令)으로 있던 동선이 그를 잡아다 죽이었다. 그러자 공주가 이 일을 임금께 하소연한 결과, 마침내 임금이 동선을 잡아다 놓고 공주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자, 억지로 머리를 조아리게 하니, 동선이 두 팔로 땅을 힘껏 버티어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으므로, 임금이 마침내 강항령(强項令)을 내보내라고 명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七十七>

소평[邵平] () 나라 동릉후(東陵侯), 진 나라가 망한 뒤에 포의(布衣)로 가난하게 살면서 장안(長安) 성 동쪽에 오이 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하게 은사(隱士)의 생활을 즐겼다. <史記 蕭相國世家>

소평과[召平瓜] 소평과는 진()의 유민인 소평(召平)이 장안성(長安城) 동편에 오이[]를 심어서 그것이 유명하였으므로 과() 자를 붙여 소평과라 한 것인데 소하(蕭何)가 승상(丞相)이 되어 5천 호()의 봉작(封爵)을 받자 소평이 소하에게 임금에게 의심을 받기가 쉬우니 봉작을 사양하고 받지 말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다가 화를 입었다. <史記 蕭相國世家>

소평과포[邵平瓜圃] 은거(隱居)하고 있다는 뜻이다. ()는 소()로도 쓴다. 사기(史記) 54평은 진()이 망하자 시골에 은거하여,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외를 심었는데 외맛이 좋았으므로 세속에서 동릉과(東陵瓜)라 하였다.” 한다.

소평포[邵平圃] 소평(邵平)이 진() 나라 때 동릉후에 봉해졌는데, 진 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가난한 선비의 신분으로 장안(長安)의 성() 동쪽에 오색과(五色瓜)를 심어서 생활을 영위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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