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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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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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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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욕투비[宵雅欲投畀] 참소를 입어 궁형(宮刑)을 받은 사람이 참언한 자를 지극히 미워하면서 이리와 호랑이, 북쪽의 불모지, 하느님에게 던져주고 싶다고 탄식한 노래를 말한다. <詩經 小雅 巷伯>

소아유유음[宵雅有遺音] 시경(詩經) 소아(小雅) 시월지교(十月之交)를 말한다. 10월에 들어서서 일식(日蝕)과 천둥 번개가 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은 군신(君臣) 상하가 정치를 잘못한 탓으로서 결과적으로 백성만 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소아치[小兒癡] 동방삭(東方朔)이 서왕모(西王母)의 천도(天桃)를 도둑질하였다 한다.

소애[少艾] 젊고 아름다움을 이른다. 맹자(孟子) 만장 상에 人少則慕父母 知好色則慕少艾라 하였고, 조기(趙岐)의 주에, ‘少 年少也 艾 美好也라 하였다.

소양[昭陽] 소양전(昭陽殿)에 거처했던 한 성제(漢成帝)의 황후 조비연(趙飛燕)을 말한다.

소양[昭陽] 십간(十干) 가운데 계()의 별칭으로, 이아(爾雅) 석천(釋天)태세(太歲)가 계()에 있는 것을 소양이라 한다.”라 하였다.

소양왕[昭襄王] 기원전 307- 251년 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범수(范睢)와 백기를 등용하여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는 사천성을 점령하여 당시 진나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초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어서 사천성의 인력과 자원을 이용하여 수로로 초나라를 공격하여 그 도성인 지금의 호북성 강릉인 영성(郢城)을 점령하여 그 땅에 남군(南郡)을 설치하고 진나라 땅으로 삼았다. 초나라는 영성에서 쫓겨나 지금의 하남성 진성현(陳城縣)으로 쫓겨갔다. 그리고 장군 백기(白起)를 시켜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40만의 조나라 대군을 몰살시켜 전국시대 나머지 여섯 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막강한 진나라의 국력을 바탕으로 소양왕은 제나라의 민왕(湣王)에게 제의하여 자기는 서제(西帝), 민왕은 동제(東帝)로 각각 호칭하자고 제의하였으나 얼마 후에 제민왕이 동제라는 칭호를 버리자 소양왕도 더 이상 제()란 칭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소양왕(昭襄王)이 제업을 이루었던 말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소양전[昭陽殿] 한 성제(漢成帝) 때 황후 조비연이 거처했던 궁궐 이름으로, 이후 총애를 받는 후비의 궁전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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