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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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서주문외루[西州門外淚] 죽고 없는 자를 그리워하여 흘린 눈물. 진(晉)의 사안(謝安)이 신성(新城)을 진무하다가 병이 위독하여 환도(還都)하면서 그 수레가 서주문(西州門)을 통과했었는데, 사안이 죽은 후 그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양담(羊曇)이 일부러 그 길을 피하여 서주(西州) 길을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크게 취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문 앞에 당도하였는데, 좌우에서 여기가 서주문이라고 하자 양담은 비감을 못이겨 말채찍으로 문짝을 두드리며 통곡을 하고 갔었다. <晉書 謝安傳>
❏ 서주상왕[徐州相王] 기원전 341년에 당시의 패권국 위나라의 대군을 마릉에서 전멸시킨 제위왕은 7년 뒨 기원전 334년에 위혜왕과 한소왕을 서주로 불러 그들로부터 조현을 받았다. 위와 한 두 왕은 서주의 회견에서 당시 왕호를 칭하고 있지 않았던 제위왕을 왕으로 높여 칭하자 제위왕도 위(魏)와 한(韓) 두 군주가 왕호를 칭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를 역사상 서주상왕이라고 한다.
❏ 서주철복동[西周轍復東] 중국의 서쪽 풍호(豐鎬)에서 도읍하던 주(周) 나라는 유왕(幽王)이 학정(虐政)을 하다가 견융(犬戎)에게 시해(弑害)된 후, 평왕(平王)은 동쪽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기었다. 이것을 동천(東遷)이라 하며, 이 이전을 서주라 한다. 평왕이 동천하고 나서부터 주 나라는 쇠약해졌다. <史記 卷四 周本紀>
❏ 서주화류[西州花柳] 진(晉) 나라 때 사안(謝安)이 신성(新城)을 지키다가 병이 위독해져 부득이 서주의 성문을 통하여 돌아오게 되자, 평소 동산(東山)에 은거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함을 매우 슬퍼했었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 그의 생질인 양담(羊曇)이 자기 외숙의 일을 가슴 아프게 여겨 서주의 길로 다니지도 않았는데, 한번은 크게 취해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지나다가 좌우 사람이 “이곳이 서주의 성문이라.”고 말하자, 양담은 비감(悲感)을 견디지 못해 통곡을 하고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七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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