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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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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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생[棄繻生] 기유생은 유(繻)를 버린 선비라는 뜻으로 즉 한(漢) 나라 종군(終軍)을 가리킨다. 종군이 약관(弱冠)에 제남(濟南)으로부터 박사관(博士館)으로 갈 적에 걸어서 관문(關門)에 들어서자 관리(關吏)가 종군에게 유를 주었다. 종군이 “이것이 무어냐?” 하고 묻자 관리가 “돌아올 때에 이것을 반납하여 부절에 맞추어 확인하기 위함이다.”하니, 종군이 “대장부가 서쪽에 나왔다가 출세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라 하고는 그 유를 버리고 갔는데, 뒤에 종군이 알자(謁者)가 되어 사행(使行) 자격으로 다시 이 관문으로 나가게 되자 관리가 말하기를 “이 사자(使者)가 바로 옛날에 유를 버리고 간 그 선비[棄繻生]이다.”라고 하였다는 고사이다. <漢書 卷六十四 終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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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생[棄繻生] 한(漢) 나라 때의 문장가 종군(終軍)을 말한다. 유(繻)는 비단쪽인데 권부(券符)와 같은 신표이다. 종군은 18세에 박사 제자(博士弟子)에 뽑혀 관(關)에 들어가는데, 관리(關吏)는 종군에게 유(繻)를 주면서 “이는 다시 전(傳)을 타고 돌아올 때 쓰는 신표다.”라고 하자, 종군은 “대장부가 서울에 온 이상 다시 전을 타고 가지는 않겠다.”라고 하고는 유(繻)를 버리고 갔었다. 그 후 그는 알자(謁者)가 되어 이번에는 절(節)을 세우고 관(關)을 나가자 관리(關吏)는 알아보고 “이분은 지난번의 기유생이다.”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漢書 終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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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紀昀] 기균은 청 고종(淸高宗) 때 진사에 급제한 후 시독 학사(侍讀學士)·대학사(大學士) 등 수많은 관직을 역임하고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이르렀는데, 그는 경서(經書)를 비롯하여 백가(百家)에 정통한 학자로서, 특히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총찬(總纂)의 직임을 맡아 이를 교정 정리(校訂整理)하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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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은[祈恩] 고려(高麗) 때 덕적산(德積山)과 송악산(松岳山) 등처에 봄·가을로 환시(宦侍)와 무녀(巫女)를 보내어 여악(女樂)을 베풀고 제사를 지내던 일이다. 조선 건국 초기인 태종(太宗) 11년(1411)에 기은제를 혁파하고 다만 조관(朝官)을 파견하여 향축(香祝)을 가지고 가서 제사하게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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