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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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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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루[曠婁] 사광(師曠)과 이루(離婁)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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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류거[廣柳車] 상여(喪輿)를 말한다. <史記 季布傳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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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光陵] 세조(世祖)의 능으로 남양주군(南楊州郡) 진접면(榛接面) 부평리(富坪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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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廣陵] 한성(漢城)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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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光陵] 조선 세조(世祖)를 가리킨다. 세조는 불교를 신봉하여 1466년 유점사(楡岾寺)에 거둥하여 중 학열(學悅)에게 명해서 개수(改修)함으로써 유점사가 거찰(巨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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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廣陵] 지금의 양주(揚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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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관도[廣陵觀濤] 문선(文選) 권34 칠발(七發)에 “팔월 보름날 여러 공후(公侯) 및 먼 지역에서 사귄 형제들과 함께 광릉의 곡강(曲江)으로 물결치는 것을 구경하러 갔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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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금[廣陵琴] 거문고 가락 이름이다. 광릉산(廣陵散). 진(晉)의 혜강(嵇康)이 낙서(洛西)에서 놀 때 화양정(華陽亭)에서 자면서 거문고를 퉁기다가 뜻밖에 나타난 어느 객으로부터 전수받은 곡이 바로 광릉산인데, 뒤에 혜강이 종회(鍾會)의 참소로 인하여 사마소(司馬昭)에게 끌려 동시(東市)의 형장으로 갔을 때 태학생(太學生) 3천 명이 나서서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청했으나 사마소는 그를 불허했다. 이에 혜강은 형장(刑場)에서 그 곡을 마지막으로 타면서 “광릉산이 이제 세상에 없게 되었구나[廣陵散 於今絶矣]”라 하였다 한다. <晉書 嵇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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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산[廣陵散] 거문고 곡조의 이름이다. 삼국시대 위(魏) 나라 혜강(嵇康)이 즐겨 연주하던 금곡(琴曲) 이름으로, 참소를 받고 사형을 당할 때, 형장(刑場)에서 마지막으로 그 곡을 탄주하고 곡이 끝난 뒤에 탄식하기를 “원효니(袁孝尼)가 일찍이 나에게 광릉산을 배우겠다 하였으나 나는 그때마다 거절하였는데, 광릉산이 이제 맥이 끊기는구나[廣陵散 於今絶矣]”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二十一 王粲傳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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