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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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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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성사[高門盛事] 한(漢) 나라 우정국(于定國)의 아버지 우공(于公)이 대문을 높이 세우면서 자손 중에 자신의 음덕(陰德)으로 귀하게 될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정국이 승상이 되고 영(永)이 어사대부가 되었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漢書 于定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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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菰米] 포아풀과에 속하는 다년생의 수초(水草)이다. 잎은 자리를 만드는 데 쓰이고 열매와 어린 싹은 식용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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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령[告緡令] 다른 사람의 숨겨진 재산을 고발하도록 장려한 법령으로, 신고 된 재산은 고발한 자와 정부가 절반씩 차지했다. 緡(민)이란 1貫(관: 1,000전)마다 20전씩 소득세를 바치는 세법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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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령[告緡令] 한나라 무제 때 재산을 은닉하여 세금을 포탈한 상인들을 적발하여 세금으로 추징한 법령이다. 민(緡)은 동전을 꿰는 끈을 말하나 1천 전을 꿴 화폐의 단위이다. 한무제는 부상(富商)과 대고(大賈), 고리대금업자 등의 상업자본가를 압박하여 대대적인 흉노정벌로 고갈된 국가재정을 채우기 위해 시행한 중요 정책이다. 원수(元狩) 4년 기원전 119년, 산민령(算緡令)을 반포해서 대상(大商), 대고(大賈), 고리대금업자 등에게 스스로 소유재산을 신고토록 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재산세를 징수했다. 매 2천 전, 즉 2민(緡) 당 120전에 해당하는 1산(算)을 납부토록 했다. 그러나 상인 등의 상업자본가들이 재산을 은닉하여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하더라도 재산을 줄여 신고함으로 해서 산민령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자, 다시 고민령(告緡令)을 반포했다. 양가(楊可)를 등용하여 고민령의 시행을 감독시켰는데 재산을 은닉하거나 속여 신고한 사람을 고발하여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는 고발당한 사람은 그 재산을 전부 몰수당하고 동시에 1년 동안 변경에 가서 군역에 복무해야 했으며, 몰수한 재산 중 절반을 고발한 사람에게 포상금으로 지불한다는 내용의 법이었다. 이 법이 발표되자 전국각지에서는 서로 다투어 고발함으로 해서 대상업자본가는 완전 몰락하게 되었으며, 국가는 수 억 전의 돈과 함께 상업자본가 소유의 광할한 농지 및 노비들을 재정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고민령은 근 10년간 시행했다가 원봉(元封) 원년인 기원전 110년에 가서야 비로소 중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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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밀[高密] 고밀은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고밀 사람이므로 그를 이르는데, 금문상서(今文尙書) 이십팔 편(二十八篇)에 대해서 정현이 일찍이 주해(註解)를 해 놓았으나,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연간에 공영달(孔穎達)이 상서정의(尙書正義)를 지으면서 동진 원제(東晉元帝) 때 매색(梅賾)이 만든 위공전(僞孔傳)만을 오로지 채택하고, 정현의 주해에 대해서는 위작(僞作)이라고 단정하여 이를 배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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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밀[高密] 지금의 산동성 고밀현(高密縣) 경내에 있었던 고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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