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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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팽아[彭衙] 중국 풍익군(馮翊郡)에 있는 성(城) 이름인데 오늘날 섬서성(陝西省) 백수현(白水縣) 동북쪽에 위치한다. 당 나라 두보(杜甫)가 천보(天寶) 15년(756)에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를 피해 있었던 곳으로 피란지의 대명사로 쓰인다.
❏ 팽월[彭越] 팽월은 항우(項羽)를 섬기다 한(漢) 나라에 귀순하여 기공(奇功)을 세우고 양왕(梁王)에 봉해졌는데, 한신의 죽음을 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병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보호하다가 고조(高祖)의 노여움을 사 마침내 효수(梟首)되었다. <史記 卷90>
❏ 팽은초옥가가흥[烹銀炒玉家家興] 퇴계(退溪)의 시에 “집집마다 일어나서 뱅어회 옥을 썰어 논 듯, 담장마다 가을 국화 황금을 흩어 논 듯.[白魚切玉家家興 黃菊排金院院秋]”이라는 표현이 보이다. <退溪集 卷1 湖上園亭偶出效康節體>
❏ 팽조[彭祖] 성(姓)은 전(錢), 이름은 갱(鏗)으로 요(堯) 임금의 신하이다. 8백 세를 살았다 한다.
❏ 팽조무함[彭祖巫咸] 팽조는 전욱(顓頊)의 후손으로서 순(舜) 때부터 주(周) 나라에 이르기까지 7백여 년을 살았다고 하며, 무함은 약초를 캐어 먹으며 장생했다고 한다.
❏ 팽택[彭澤]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이 되었다가, 독우(督郵)가 팽택현에 왔을 때 아전이 의당 큰 띠를 띠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므로, 도잠이 탄식하기를 “내가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하고는, 즉시 인끈을 풀어 던지고 팽택을 떠나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 팽택거가백리[彭澤去家百里]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당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멀리 나가서 벼슬하는 것을 꺼렸으나, 팽택현으로 말하면 집에서 단지 거리가 백 리 정도 떨어져 있고[彭澤去家百里] 공전(公田)의 수입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겠기에, 이곳으로 가기를 구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 팽택공전출[彭澤公田秫] 동진(東晉) 때의 고사(高士)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이 되었을 때 아전을 시켜 현(縣)의 공전(公田)에 모두 수수를 심도록 하고 말하기를 “내가 항상 술에 취할 수 있으면 족하다.” 하였다. <晉書 隱逸 陶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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