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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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조과[鳥窠] 당(唐) 나라 때에 어느 중이 산 위 높은 소나무 위에 깃들여 사는데, 사람들이 그를 새둥주리 선사[鳥窠禪師]라 일렀다. 다시 까치가 그 옆에 깃들이니, 사람들이 “까치집 화상[鵲巢和尙]”이라 일렀다. <傳燈錄>
❏ 조과선사[鳥窠禪師] 당(唐) 나라 고승(高僧) 도림선사(道林禪師)를 말한다. 그의 성은 오씨(吳氏), 이름은 원경(元卿)으로, 진정산(秦亭山)에 들어가 큰 일산처럼 생긴 소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데 까치가 그 옆에 둥지를 짓고 깃드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조과선사라 불렀다. <傳燈錄 卷四, 淵鑑類函 卷三百十七>
❏ 조과입실[操戈入室] 후한(後漢) 때 하휴(何休)가 공양학(公羊學)을 좋아하여 공양묵수(公羊墨守)·좌씨고황(左氏膏肓)·곡량폐질(穀梁廢疾)을 지었는데 정현(鄭玄)이 그에 반박하는 설을 짓자, 하휴가 보고서 탄식하기를 “강성(康成)이 내 집에 들어와 내 창을 잡고서 나를 친단 말이냐.”라고 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三十五 鄭玄傳>
❏ 조관[照管] 밝게 살핌. 맡아서 보관함. 살펴서 단속하거나 처리함.
❏ 조관[條貫] 조리(條理)와 같다.
❏ 조괄[趙括] 전국(戰國) 시대 조(趙) 나라 장군 조사(趙奢)의 아들. 병법(兵法)을 배워 조금 알고는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늘 자부하였으므로 자기 아버지로부터, 조 나라 군대를 망칠 사람은 틀림없이 괄(括)일 것이라는 경계를 받았다. 그 후 염파(廉頗)를 대신하여 장군이 되어서는 자기 멋대로 전쟁을 수행하여 진(秦) 나라 장수 백기(白起)에게 크게 패하여 죽고 말았다. <史記 卷八十一>
❏ 조괄[趙括]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60년에 죽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장군으로 명장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아들로 조사가 죽자 마복군이라는 봉호을 이어받아 마복자(馬服子)라고 불렀다. 지상병담(紙上兵談) 즉 병론에만 밝아 실제적으로 군사를 부릴 재능이 없었다. 주난왕(周赧王) 55년 기원전 260년 진(秦)나라의 반간계에 떨어진 조효성왕(趙孝成王)에 의해 잘 싸우고 있던 염파(廉頗)를 조군의 총대장에서 파면하고 대신 조괄을 임명해 그 직을 대신하도록 명했다. 그는 조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장평(長平)에서 무모하게 출전하여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을 감행했다가 진나라의 명장 백기의 전략에 빠져 살해당하고 그가 이끌던 40만에 달하는 조나라 군졸은 진나라에 항복했다. 진군 대장 백기는 40만의 항졸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으로써 조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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