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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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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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리[接䍦] 접리는 두건(頭巾)의 이름인데, () 나라 때 산간(山簡)이 술이 곤드레가 되어 접리를 거꾸로 썼다는 고사가 있다. () 나라 때 산간(山簡)이 풍류가 있고 술을 좋아하였으므로, 당시 아동들이 노래하기를 산공이 어디를 나가느뇨. 고양지까지 가는구나 석양엔 거꾸로 실려 돌아와서 잔뜩 취해 아무 것도 모른다네. 때로는 말을 타기도 하는데 백접리를 거꾸로 쓰고서 채찍 들고 갈강을 향해 가니, 어찌 그리도 병주아와 같은고.[山公出何許 往至高陽池 日夕倒載歸 酩酊無所知 時時能騎馬 倒著白接䍦 擧鞭向葛疆 何如幷州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접몽환장주[蝶夢還莊周]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장주인 줄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깨어나니 바로 장주였다. 이에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莊子 齊物論>

접석[接淅] 부리나케 떠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제() 나라를 떠날 적에 바쁘게 떠나느라 밥을 지으려고 쌀을 담가 두었다가 그냥 건져 가지고 떠났던[接淅而行] 고사가 있다. <孟子 萬章下>

접암배향[蜨菴配享] 게을러 낮잠 자기에 알맞음을 말한 것이다. 접암(蜨菴)은 암자 이름으로 접()은 접()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장주(莊周)가 꿈에 호접(胡蝶)으로 화했다는 고사를 들어 붙인 이름이다. 후당(後唐)의 이우(李愚)는 밤낮 없이 공직에 매달려 매우 바빴다. 그는 사람에게 내가 이다지도 바빠 한번도 꿈나라에 가보지 못하니, 낙양(洛陽)에다가 수죽(水竹)을 사서 접암(蝶菴)을 짓고는 모든 일 버리고 여기에서 살려는데, 이 암자에는 마땅히 장주를 시조로 모시고 신선인 진박(陳搏)을 배향시키겠다.”라고 하였다. <淸異錄>

접여[接輿] 춘추 때 초() 나라 사람 육통(陸通). 접여는 자()이다. 난세를 만나 미친 체하니 사람들이 초광(楚狂)이라 일컬었다.

접여[接輿]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나라의 은사(隱士). 성은 육()이고 이름은 통()이다. 접여(接輿)는 그의 자()이다. 일부러 미친 척하여 세상을 피해 다녔으며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어먹는 것을 해결했다.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楚狂接輿초광접여]’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공자(孔子)가 그의 나이 62세 때인 초소왕(楚昭王)이 재위하던 기원전 488년에 초나라에 들렸을 때 접여는 수레를 타고 지나가던 공자를 비웃으며 봉황새야! 봉황새야![鳳兮 鳳兮] 너의 덕은 어찌 이리 쇠락해 졌던 말인가?[何德之衰] 지난날의 잘못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往者不可諫兮] 앞날의 잘못이야 피할 수 있으리![來者猶可追也] 그만두어라![已而已而] 지금은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 위태로울 진데.[今之從政者殆而]”라고 노래하였다.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했으나 그가 급해 몸을 피해 달아났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한다. <孔子世家>

접여광가[接輿狂歌] 춘추 시대 초 나라의 미치광이인 접여가 공자(孔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 봉새여, 봉새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는고, …… [鳳兮鳳兮 何德之衰]”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접역[鰈域] 가자미가 나는 바다 연안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이아(爾雅) 의소(義疏)동방에 비목어(比木魚)가 있는데, 두 마리가 나란히 가지 않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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