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반응형

우자모전계[愚字冒前溪] 우 자로 시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곧 당() 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 지방으로 유배되었을 적에 그곳에 있는, 본디 염계(冉溪)라고 불리던 시내를 우계(愚溪)로 개명(改名)하여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묘사한 데서 온 말이다.

우잠[虞箴] 양웅(揚雄)이 우잠(虞箴)을 지어 사냥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사냥을 맡은 관원을 우인(虞人)이라 한다.

우잠[虞箴] 우인(虞人)의 경계 말. 주 무왕(周武王)의 태사(太史) 신갑(辛甲)이 백관에게 각자 경계 말을 만들라고 명하니 우인이 임금은 사냥을 삼가야 한다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春秋左傳 襄公 四年>

우잠[虞箴] 춘추(春秋) 시대에 진() 나라 임금이 사냥을 좋아하므로, 위강(魏絳)이 말하기를 옛날 주() 나라 신갑(辛甲)이 태사(太史)가 되었을 때에, 백관(百官)을 시켜 관잠(官箴)을 지었는데, 산야(山野)의 짐승을 맡은 벼슬인 우인(虞人)의 잠()에 사냥을 경계하는 말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우잠[牛涔] 협소한 것을 뜻한다. 회남자(淮南子)소발굽 자국에 고인 빗물에는 미꾸라지조차 살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우잠의질[牛涔蟻垤] 우잠은 소 발자국에 괸 물을 말한 것으로, 우잠과 개미둑을 가장 하찮은 산수의 뜻으로 전용(轉用)한 것이다.

우장[羽仗] 우장은 깃으로 만든 의장(儀仗)이다.

우재유허비[尤齋遺墟碑] 우재는 송시열(宋時烈)의 호. 송시열이 숙종 15(1689)에 제주로 귀양을 갔는데 그곳에 세워진 비에 대한 시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