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王桃] 3천 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로, 동해 바다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선도(仙桃)를 말한다.

왕도[王導] ()는 무홍(茂弘), 임기(臨沂) 사람. 동진(東晉) 때 승상(丞相)을 지냈다.

왕돈[王敦] 왕도(王導)의 당형(堂兄)으로서 자()는 처중(處仲)이며 일찍이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을 지냈다.

왕돈[王敦] 왕돈은 진()나라 임기(臨沂)사람인데 그의 종형(從兄) 왕도(王導)와 함께 원제(元帝)를 적극 추대하여 요동대장군 겸 도독육주제군사(遼東大將軍兼都督六州諸軍事)가 되었다가 강주 자사(江州刺史)와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냈다. 나중에는 권력을 잡고서는 군사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왕을 조알(朝謁)하지 않음으로써 조정을 좌지우지할 계획을 갖고 있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켜 조정에 들어가 스스로 승상이 되었으며, 원제가 죽은 뒤에 물러나 있다가 또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지휘하던 중 병으로 죽어 결국 실패하고 시신의 목이 잘려 저자 거리에 내걸렸다. <晉書 卷九十八 王敦傳>

왕돈개합[王敦開閤] () 나라 때 왕돈(王敦)이 여색(女色)에 빠져 몸이 무척 쇠약해지자 좌우(左右)에서 여색을 삼가라고 간()하므로, 왕돈이 그것이야 매우 쉬운 일이다.”라 하고는, 뒤의 합문(閤門)을 활짝 열어젖히고서 비첩(婢妾) 수십 명을 모두 몰아내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왕랑[王郞] 왕랑은 임공영(臨邛令)으로 있던 왕길(王吉)을 가리킨다.

왕랑담우[王郞啖牛] ()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소싯적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으로 여기는 소 심장을 꺼내 맛본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卷6 汰侈>

왕랑회선[王郞回船] () 나라 때 호방한 사람으로 유명한 왕휘지(王徽之)가 눈이 내리는 밤 흥에 겨워 배를 저어 섬계(剡溪)에 사는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그의 문전에서 다시 되돌아왔다 한다. <晉書 卷八十 王徽之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