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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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무적[無適] 뜻을 바꾸지 않다.
❏ 무전가환형[無錢可喚兄] 혈기 방장한 소년 시절의 기백을 되살려 호기 있게 술을 마셔 보고 싶다는 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아직도 소년의 호기 부리고 싶은 구석 있어, 장장이며 은형 모두 나오라고 소리치네.[猶有誇張少年處 笑呼張丈喚殷兄]”라는 표현이 있다. <白樂天詩後集 卷7 歲日家宴戲示弟姪等兼呈張侍御二十八丈殷判官二十三兄>
❏ 무정[武丁] 상왕조의 제 23대 왕으로 기원전 1325년부터 1266년까지 59년간 재위에 있었다. 일설에는 기원전 1329년 제위에 올랐다고 했다. 묘호(廟號)는 고종(高宗)이다. 소을(小乙)의 아들이고 조경(祖庚)의 아버지다. 전설에 의하면 무정이 어렸을 때 그의 부왕인 소을이 그를 민가에 보내 농사를 짓게 하면서 노역들과 함께 살게 하고, 다시 그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나가 국경 밖의 이민족을 정벌하게 했다고 했다. 소을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무정은 상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현인을 찾다가 부암(傅岩)이란 곳에서 노역을 하던 노예 출신의 부열을 얻어 재상으로 삼았다. 부열의 도움으로 정치를 쇄신하고 덕을 베풀었으며 서북쪽의 귀방(鬼方)과 강방(羌方)을 정벌하였으며 남쪽의 형만(荊蠻)을 공격하여 상나라의 국세를 획기적으로 신장시켰다. 상나라는 부열의 도움으로 무정 치세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 무정하[無定河] 무정하는 일통지(一統志)에 의하면, 陝西 延安府 靑澗縣 東六十里에 있다 한다. 진도(陳陶)의 농서행(隴西行)에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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