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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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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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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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枚生] 기원전 140년에 죽은 서한의 관리이며, 저명한 사부가(辭賦家) 매승(枚乘)을 말한다. 자는 숙()으로 매생은 별칭이다. 처음에 오나라의 낭중(郎中)이 되었다가 오왕 유비(劉濞)가 반란을 획책하자 그는 표문을 올려 해롭고 이로움을 열거하며 중지할 것을 간했으나 오왕은 듣지 않았다. 그때 양효왕 유무(劉武)의 세력이 높아 귀하게 되어 문사들을 초빙하여 받들었음으로 매승은 즉시 오나라를 떠나 양나라로 들어갔다. 양효왕은 매승을 낭중으로 삼았다. 얼마 후에 관직을 물러나 향리로 돌아가 은거했다. 경제 3년 기원전 154, 오초칠국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다시 오왕에게 천하정세를 분석한 표문을 올려 군사를 거두어들이기를 권했다. 오왕은 여전히 매승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칠국의 란이 평정되자 그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져 경제가 불러 그를 홍농도위(弘農都尉)에 임명했다. 군의 관리들이 불쾌하게 생각했음으로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도위직을 그만두고 다시 양나라로 들어가 유유자적했다. 당시의 저명한 사부가(辭賦家) 추양, 엄기 등과 교우하고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효왕의 문객들은 모두가 이름있는 사부의 대가였으나 그의 사부는 그 중에서 최고였다. 기원전 144년 양효왕이 죽자 양나라를 떠나 회음으로 돌아갔다. 태자로 있을 때 평소에 그의 명성을 들었던 한무제가 즉위하자 즉시 부들로 치장한 안거(安車)를 보내어 초빙했으나 노년으로 인하여 도중에 죽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매승부(枚乘賦)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매생은[梅生隱] 매생은 한() 나라 때의 은사 매복(梅福)을 이른다. 매복은 상서(尙書)와 춘추(春秋)에 정통하여 군문학(郡文學)이 되고 남창위(南昌尉)에 보임되었었는데, 뒤에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가 왕망(王莽)이 국정을 전횡할 때를 당해서는 처자(妻子)를 버리고 떠나 성명을 고치고 오시(吳市)의 문졸(門卒) 노릇을 하였었다. <漢書 卷六十七>

매서[枚筮] 점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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