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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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등영[登瀛] 선비가 총애와 영광을 입은 것을 신선의 세계에 오른 것에다 비유한 것인데, 영주는 전설에 신선이 사는 산이라고 하였다. 당(唐) 무덕(武德) 4년에 태종(太宗)이 태자가 되어 궁성의 서쪽에 문학관(文學館)을 열고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18명을 학사(學士)로 삼고 정사를 자문하였다. 그 선발에 든 사람을 사람들이 선망(羨望)하여 등영주(登瀛洲)라고 일컬었다. <新唐書 卷一百二 褚亮傳>
❏ 등영주[登瀛洲] 영주는 당 태종(唐太宗)이 설치한 문학관(文學館) 이름으로, 여기에 임명된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등 이른바 ‘십팔학사(十八學士)’를 당시에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영주에 올랐다[登瀛洲]’고 일컬었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02 褚亮傳>
❏ 등오정[登鼇頂] 동해에 자라[鼇]가 산을 이고 있는데, 그 위에 신선이 산다 한다.
❏ 등왕각[縢王閣] 당나라 문인 왕발(王㪍)이 교지령(交趾令)으로 있는 아버지 복치(福畤)를 보러 가는 길에, 꿈에 강신(江神)이 와서 말하기를 “내일 9월 9일에 남창(南昌)의 등왕각(滕王閣)을 중수(重修)한 낙성식(落成式)이 있으니 참석하여 글을 지어 이름을 내라.”라고 하였다. 왕발이 대답하기를 “여기서 남창까지 7백 리인데 하룻밤 사이에 당도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강신(江神)은 “배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바람을 빌려 주리라.”라고 하므로, 왕발은 과연 하룻밤 사이에 남창에 도착하니 홍주 자사(洪州刺史)가 등왕각에 낙성식을 크게 열고 여러 손들에게 필묵(筆墨)과 종이를 돌려 글을 짓게 하였다. 사실은 자사(刺史)가 자기의 사위를 시켜 미리 글을 지어 두고 여러 손들이 사양하기를 기다려 사위의 글을 자랑하려 하였던 것이다. 다른 손은 모두 사양하는데 왕발이 사양하지 않고 붓을 드니 자사는 불쾌하여 사람을 시켜 왕발의 글을 쓰는 대로 엿보고 와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중간에 가서 “떨어진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을 쓰니, 자사가 듣고 “참으로 기이한 재주로다.”라고 하였다. 왕발은 끝에 다시 시(詩)를 쓰기를 “그림 그린 기둥은 아침에 남포의 구름에 날고 주렴은 저녁에 서산 비에 걷는다.[畵棟朝飛南浦雲 珠簾暮捲西山雨]”라 하였다. 등왕각은 등왕(滕王)에 봉해진 당고조(唐高祖)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洪州)의 도독(都督)으로 있을 때에 세운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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