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독수공방[獨守空房]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을 이르는 말이다.
❏ 독숙공방[獨宿空房] 빈 방에서 혼자 잠. 부부가 별거.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 독수공방(獨守空房).
❏ 독안룡[獨眼龍]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이란 뜻의 고사성어이다. 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때,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에게 멸망했다. 오대사(五代史) 당기(唐記)에는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 독야청청[獨也靑靑] 홀로 푸르고 푸름. 홀로 높은 지조와 절개를 드러냄. 혼탁(混濁)한 세상에서 홀로 높은 절개(節槪)를 드러내고 있음을 말한다.
'옛글[古典]산책 > 옛글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돈[沌沌]~돈복[敦復]~돈우[돈우] (0) | 2015.05.04 |
---|---|
독행[篤行]~돈간[敦艮]~돈견[豚犬] (0) | 2015.05.04 |
독천장오[瀆川藏汚]~독학모귀요[獨鶴暮歸遼]~독항이강린[督亢餌强隣] (0) | 2015.05.03 |
독우청주[督郵淸酒]~독의루[獨倚樓]~독창근제[督昌覲帝] (0) | 2015.05.03 |
독옥[櫝玉]~독왕[獨往]~독우[督郵] (0) | 2015.05.03 |
독서삼여[讀書三餘]~독서상우[讀書常友]~독성인[獨醒人] (0) | 2015.05.03 |
독서망양[讀書亡羊]~독서삼도[讀書三到]~독서삼매[讀書三昧] (0) | 2015.05.02 |
독보[獨步]~독불견[獨不見]~독비곤[犢鼻褌] (0) | 2015.05.02 |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독반제인[獨返齊人]~ 독배[牘背] (0) | 2015.05.02 |
독락당[獨樂堂]~독록편[獨漉篇]~독립당시[獨立當時] (0) | 2015.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