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모상사여[金母常使汝] 금모(金母)는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를 지칭하는 말인데, 태양 속에 있다는 삼족오(三足烏)가 항시 서왕모를 위해 먹을 것을 가져다준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다행히 삼족오가 있어 부리게 되었다.”는 주에 삼족오는 청오(靑烏)인데, 주로 서왕모를 위해 먹을 것을 가져다 준다.”라 하였다.

  • 금모후[金毛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즉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말로 부처의 설법하는 소리를 사자(獅子)의 영각[哮吼]에 비유하는 말이다.

  • 금문[金文]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말한다. ()이나 솥 등에 새겨있다 하여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새겨진 글자들은 주로 덕과 영광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하는 것과 귀족들의 제사·전쟁 등에 관한 기록이 많다. 갑골문보다 글씨가 정교하고 균형이 잡혔으며 획이 부드럽다. 세공 기술이 발달하기도 하였지만 이미 붓과 같은 필기도구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 금문[錦文] 금자서(錦字書)와 같은 뜻으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편지를 말한다. 전진(前秦) 두도(竇滔)의 처 소혜(蘇蕙)가 유사(流沙)로 쫓겨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비단 옷감 위에 회문시(廻文詩)를 지어 보낸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列女傳 竇滔妻蘇氏>

  • 금문[金門] 금마문(金馬門)의 준말이다. 한무제(漢武帝)가 학사(學士)로 하여금 금마문에서 대조(待詔)하여 고문(顧問)에 대비하게 하였다. 미앙궁(未央宮) 앞에 동마(銅馬)가 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진사왕전(陳思王傳)금문을 밀치고 옥계(玉階)를 밟았다.”하였고,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歷金門上玉堂有日이라 하였다.

  • 금문대조[金門待詔]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동방삭(東方朔주보언(主父偃엄안(嚴安서락(徐樂)등이 모두 금마문에서 조명을 대기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 금문상서[今文尙書] 서경(書經)은 진() 나라가 모든 책을 불태운 뒤에 세상에서 전송(傳誦)하는 자가 없었으므로 한() 나라 초기에 서경(書經)의 학문을 복구하기 위하여 서경(書經)을 잘 아는 사람을 천하에 구했으나 없었다. 이때 마침 복승(伏勝)이 잘 안다는 말을 듣고 불러오려 하였으나 복승의 나이 이미 90이 넘어 걸음을 걸을 수 없으므로 태상장고(太常掌故) 조조(鼂錯)에게 명하여 가서 받아오게 하였다. 복승은 29편을 전송하니 이것을 금예(今隷)로 썼기 때문에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였다. 금문상서는 고문상서보다 16편이 적다. 이것은 복승이 다 기록하지 못하여 탈락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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