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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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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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公劉] 후직의 자손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던 주족을 다시 일으키고 후직이 시작했던 농사의 일을 부흥시켰다. 후직이 죽고 그의 아들인 불줄(不窋)이 뒤를 이었다. 불줄 말년에 하후씨의 정치가 문란하게 되어 농사(農師)의 관직을 폐하여 다시는 농사(農事)의 일을 돌보지 않았다. 불줄이 농사(農師)의 직을 잃게 되자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융적(戎狄)의 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불줄이 죽고 아들 자국(子鞠)이 뒤를 잇고 다시 자국이 죽고 그의 아들 공유(公劉)가 뒤를 이었다. 공유(公劉)는 비록 융적의 땅에서 살았지만 다시 후직의 업을 일으켜 농사의 일을 돌보며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과 곡식의 종자를 찾아 나섰다.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고 다시 위수(渭水)를 건너 목재를 벌목하여 가져와 종족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었으며 종족들 중 외지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여비를 주고 나가지 않고 종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위해 저축을 해 주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모두 그에게 의지하여 편안하게 되었다. 다른 종족들도 모두 그의 선행에 감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귀의하였다. 주나라의 기업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인들이 노래를 불러 그의 덕을 칭송했다. <周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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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예씨각중앙[空遊羿氏殼中央] “예씨의 활줄 한복판에 공연히 놀았다.”라 함은 과거에 여러 번 응했으나 급제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예씨(羿氏)는 유궁후예(有窮后羿)로 활을 잘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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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융[孔融] 후한(後漢)의 학자이다. 소년 시절에 천하에 명망이 높은 이응(李膺)으로부터 재주를 인정받아 명사가 되었다. 공자(孔子)의 20세손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의 상(相)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儒學)을 가르쳤으며, 한실(漢室)의 부흥을 꾀하다 실패, 뒤에 조조(曹操)에게 피살되었다. 저서에는 공북해집(孔北海集)이 있다. <後漢書 孔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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