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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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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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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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가체부[獻可替否] 시행해야 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시행하면 안 될 것을 폐지하도록 강력히 진언(進言)하는 것을 말한다.

헌각[軒閣]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의 누각으로, 성군의 궁전을 뜻한다.

헌거[軒擧] 높이 솟는 기상으로 의기가 당당함을 말한다.

헌공롱[獻空籠] 전국(戰國) 시대 제왕(齊王)은 변사(辯士) 순우곤(淳于髡)을 시켜 초왕(楚王)에게 학(鶴)을 바치게 하였는데, 순우곤은 도중에서 학은 놓아주고 초나라에 이르러 빈 새장만을 바치면서 “신(臣)이 제왕의 사신이 되어 학을 가져왔는데 도중에 학에게 물을 먹이다가 그만 놓쳐버렸습니다. 신은 즉시 죽어 사람들의 시비를 끊고 싶었습니다만 신이 만일 죽는다면 우리 임금에게 선비를 죽게 했다는 누명을 끼쳐 드릴까 염려되옵고, 단 딴 학을 사서 대신 바치려 하였으나 이것은 신(信)이 아니므로 왕을 속이는 것이며, 딴 나라로 가버리려고 하였으나 이렇게 되면 우리 제초(齊楚)의 두 왕의 사신이 불통할까 두려워하여 이대로 와서 죄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더니 초왕은 도리어 기뻐하며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事文類聚 後集 卷四十二 羽虫部>

헌근[獻芹] 옛적에 들에 사는 한 백성이 미나리 나물을 먹다가 맛이 좋다 하여 임금에게 바치려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헌금[軒禽] 헌금은 수레를 타는 새로, 위의공(衛懿公)이 학을 좋아하여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헌길[獻吉] 헌길은 명(明) 나라 학자 이몽양(李夢陽)의 자이다.

헌납[獻納] 송나라 때의 명신(名臣)인 부필(富弼)이 거란(契丹)에 사신으로 가서 헌(獻) 자와 납(納) 자를 쓰는 일을 가지고 거란의 임금과 다툰 일을 말한다. 부필이 거란에 사신으로 갔을 때 거란의 임금이 세폐(歲幣)를 더 바치기를 요구하면서 부필에게 말하기를 “남조(南朝)에서 나에게 세폐를 보내면서는 마땅히 올려 바친다는 ‘헌(獻)’ 자를 써야 하고, 아니면 바친다는 ‘납(納)’ 자라도 써야 한다.” 하자, 부필이 이 두 글자를 쓸 수 없다고 다투었다. 그러자 거란의 임금이 “남조에서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 두 글자를 쓰지 못할 일이 뭐가 있는가. 만약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쳐들어간다면 후회가 없겠는가?”하니, 부필이 말하기를 “만약 부득이 군사를 출동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면 곡직(曲直)을 가지고 승부를 결정할 것이다.” 하였다. 이에 거란측에서 부필의 뜻을 굽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송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결정하게 하였다. 부필이 조정에 돌아와서 아뢰기를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절하여 저들의 기세가 꺾였으니 허락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마침내 ‘납’ 자를 써서 거란의 사신에게 주었다. <宋史 卷三百十三 富弼列傅>

헌납[獻納] 헌납(獻納)은 좋은 계책을 임금에게 바침이다.

헌릉[獻陵] 당 고조의 능이다.

헌말[獻襪] 옛날에 장지(長至; 동지)를 밟는다는 뜻에서 동지일(冬至日)이면 시부모에게 버선을 지어 올리는 풍속이 있었던 데서 온 말인데, 조식(曹植)의 하동지표(賀冬至表)에 의하면 “버선 일곱 켤레를 바치며 아울러 말송을 드린다.[獻襪七緉 幷爲襪頌]”라고 하였다.

헌말송[獻襪頌] 위(魏) 나라 때 조식(曹植)의 하동지표(賀冬至表)에 “버선 일곱 켤레를 바치며 아울러 말송을 올립니다.[獻襪七緉 幷爲襪頌]”라고 하였다.

헌면[軒冕] 옛날에 대부(大夫) 이상의 고관이 타던 수레와 입던 옷으로, 현달하여 고관이 되는 것을 말한다.

헌부재명조질군[獻賦才名早軼群] 한 무제(漢武帝)가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虛賦)를 읽고 감탄한 나머지 그를 대궐에 불러들이자, 상여가 그 사부(詞賦)는 제후의 일을 노래한 것이라며 다시 천자의 수렵을 소재로 하여 상림부(上林賦)를 지어서 바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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