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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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조여[曺蜍] 진(晉) 나라 팽성(彭城) 사람 조무(曹茂)의 소자(小字)로 이지(李志)와 함께 변변찮은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글씨를 잘 썼지만 남들의 눈에 보일 만한 기개가 없어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하찮게 여겼다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는 천 년 전에 죽었어도 아직 늠름하게 생기(生氣)를 발하고 있는 반면, 조여(曹蜍)와 이지(李志) 같은 무리들은 비록 살아 있다 하더라도 구천(九泉) 아래에 있는 자들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그들과 같다면 결승(結繩)의 시대에 썼던 방법으로도 다스릴 수 있겠지만, 그들이 죽고 나면 뒤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이 여우나 오소리가 그 육신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릴 따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 조여[曺呂] 설정(雪江) 조문수(曺文秀)와 동강(東江) 여이징(呂爾徵)을 가리킨다.
❏ 조여이지[曹蜍李志] 조여와 이지는 모두 진(晉) 나라 때 사람들로 글씨를 대단히 잘 썼으나 인품이 워낙 부족하여 글씨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전하여 소인의 무리에 비유한 것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 의하면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는 죽었지만 늠름하여 생기가 있고, 조여·이지는 살아 있어도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고, 황정견(黃庭堅)이 우군첩(右軍帖) 뒤에 쓴 글에는 “조여·이지 무리가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와 겨룰 만했지만 전하기에는 부족하다. 편지 한 장의 글씨라도 수백 세를 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인품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조연[조然] 일본 중의 이름인데, 송(宋)나라 때에 송나라에 와서 금문(今文)인 정현(鄭玄)의 주석한 효경(孝經)을 헌상하였다 한다.
❏ 조염매[調鹽梅] 염매는 소금과 매실을 이른다. 소금은 아주 짜고 매실은 아주 시기 때문에 두 맛을 잘 조화하여 알맞도록 한다는 뜻으로, 곧 신하가 임금을 잘 보좌하여 올바른 정사를 하게 한 데 비유한 말인데, 서경(書經) 열명 중(說命中)에 “만약 맛있는 국을 만들려거든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조영인[趙永仁] 본관은 횡성(橫城), 시호는 문경이다. 고려 의종(毅宗) 때 문과에 올라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 조영청담혹자익[照影淸潭或自溺] 꿩이 물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계속 춤을 추다가 탈진되어 빠져 죽는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異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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