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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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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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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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나용한승상[留侯那用漢丞相] 유후는 한 고조(漢高祖)의 승상(丞相) 장량(張良)의 봉호.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 나라의 대신(大臣)이었는데, () 나라에 의해 한 나라가 망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박랑사(博浪沙)에서 역사(力士)를 시켜 철퇴(鐵椎)로 진 시황을 저격했으나 실패했다가, 뒤에 한 고조를 도와 끝내 진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업(漢業)을 일으킨 다음에는 은퇴하고 말았다. 즉 장량은 부귀영화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목적이 다른 데에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漢書 卷四十>

유후노경치[留侯老更癡] () 나라 장량(張良)이 유후(留侯)로 봉하여졌다. 장량이 만년에 신선을 배운다고 벽곡(辟穀)을 하였다.

유후촌[劉後村] 후촌은 송() 나라 유극장(劉克莊)의 호. 그는 특이한 재질이 있어 문장을 잘했으며, 학문은 고금(古今)을 통하고 소아체(騷雅體)의 시사(詩詞)를 하였다. 저서로는 후촌거사집(後村居士集) ()()()()4()이 있다. <宋元學案 卷四十七>

유흠[劉歆] 유흠은 한() 나라의 대학자 유향(劉向)의 아들로, 부친의 업을 계승하여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고문(古文)을 혹독히 좋아하여 금문(今文)의 학자들과 심한 갈등을 빚은 나머지 하내태수(河內太守)를 자청하여 몸을 피하기도 하였다.

유희[庾羲] () 나라 사람으로 자는 의숙(義叔). 목제(穆帝)에게 풍간(諷諫)하는 시를 지어 올려 명망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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