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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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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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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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惟玆] ‘는 어기사이며, ‘는 이러한의 뜻이다.

유자[兪子] 자가 극기(克己)인 유호인(兪好仁)을 가리킨다.

유자[孺子] 후한 때의 고사(高士)인 서치(徐穉)의 자()이다. 그는 특히 남주(南州)의 고사로 일컬어졌고, 태수(太守) 진번(陳蕃)이 다른 손님은 일체 만나지 않고, 서치가 올 때에만 특별히 의자를 마련했다가 그가 떠나면 다시 치워 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徐穉傳>

유자가교[孺子可敎] 젊은이는 가르칠 만하다는 것으로, 열심히 공부하려는 아이를 칭찬하는 뜻의 고사성어.

유자기유고무담[柳子記留鈷鉧潭] ()나라 때의 문장가인 유종원(柳宗元)을 이른다. 그가 고무담기(鈷鉧潭記)를 지었으므로 한 말이다.

유자산[庾子山] 자산은 북주(北周)의 시인 유신(庾信)의 자(), 시풍(詩風)이 염려(艶麗)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세상에서 유개부(庾開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자선[兪子先] 자선(子先)은 유백증(兪伯曾)의 자()이다. 인조 3년 홍문관 부응교로 있으면서, 대사헌 남이공이 김류(金瑬)의 세도를 믿고서 불법을 자행한다고 탄핵했다가 이천 현감으로 좌천되었다.

유자음[遊子吟] 유자음은 본디 당 나라 맹교(孟郊)의 시인데, 그 시에 어머니가 손수 바느질한 것은 나그네가 입을 옷이로다. 떠남에 당하여 촘촘히 깁는 것은 더디 돌아올까 염려한 때문인데 촌초의 마음을 가져다가 삼춘의 봄볕에 보답하기 어려워라.[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하였다.

유자중석진[儒者重席珍]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유자(儒者)의 고상한 도덕을 형용하여 유자는 자리 위의 보배를 가지고 초빙을 기다린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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