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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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유자탑[孺子榻] 환대를 극진히 하였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태수(太守) 진번(陳蕃)이 다른 사람의 면회는 일체 거절하고, 서치(徐穉)가 올 때에만 상탑(床榻)을 내려놓고 환담하다가 그가 가면 다시 올려놓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자(孺子)는 서치의 자(字)이다. <後漢書 卷83>
❏ 유자후[柳子厚] 자후는 당(唐) 나라 문인 유종원(柳宗元)의 자이다. 유주 자사(柳州刺史)를 지냈으므로 세상에서 유유주(柳柳州)라 부른다.
❏ 유작유소[維鵲有巢] 비둘기는 본디 집을 지을 줄 몰라서 까치의 둥지를 차지하고 산다하여, 시경(詩經) 소남(召南) 작소(鵲巢)에 “까치에게 둥지가 있는데 비둘기가 차지하고 살도다[維鵲有巢 維鳩居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유장[劉璋] 익주 자사(益州刺史). 장송(張松)의 말을 믿고 조조를 멀리하고 유비(劉備)를 익주로 맞아들였다가 뒤에 유비의 모사들 책략에 의해 유비와 싸움 끝에 패하여 결국 문을 열고 항복하고 말았다. <三國志 蜀志>
❏ 유장[劉長] 고조의 여덟 아들 중 7남으로 고조 11년 기원전 196년 회남왕에 봉해졌다. 효문제 때 교만한 나머지 입조할 때는 항상 황제와 같은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갔다. 봉지에 있을 때는 한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법령을 정해 다스렸다. 문제 6년 기원전 174년 흉노 및 민월의 수령들과 내통하여 반란을 도모하려고 기도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촉군(蜀郡)으로 유배 되었다. 유배를 가던 중 절식하여 굶어 죽었다. 시호는 려(厲)이다.
❏ 유장[劉長] 유방의 막내아들이다. 고조 11년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다. 문제(文帝) 때 권세를 믿고 발호하여 입조할 때 항상 황제와 같은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갔다. 봉국을 다스리는데 조정의 법을 따르지 않고 따로 법을 제정했다. 문제 6년 기원전 174년 흉노, 민월(閩越) 등의 이민족과 연합하여 반란을 도모했으나 사전에 일이 발각되어 제후왕에서 쫓겨나 촉군으로 유배되는 형을 받았다. 촉군으로 가던 중 음식을 끊어 죽었다. 그의 아들 유안(劉安)이 후에 작위를 이어받아 회남왕(淮南王)이 되었다. 회남자(淮南子)는 유안의 저서이다.
❏ 유장[儒將] 유자(儒者)로서 장수가 된 사람. 학식이 고매하고 풍도가 유아(儒雅)한 장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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