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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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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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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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봉[衡峯] 형봉(衡峯)은 중국 형산(衡山) 남쪽에 있는 회안봉(回雁峯)을 가리키는데, 이 봉우리가 매우 높으므로 기러기가 가을이면 이곳에 와서 이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그냥 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형부나함택[荊府羅含宅] 진(晉) 나라 나함(羅含)이 환온(桓溫)의 별가(別駕)로 있을 때, 형주(荊州)의 강릉(江陵) 서쪽 소주(小洲) 위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文苑傳 羅含傳> 두보(杜甫)의 시에 “유신과 나함 모두 강릉에 집이 있었건만, 봄 오고 가을 가며 누구의 집이 되었는고.[庾信羅含俱有宅 春來秋去作誰家]”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1 舍弟觀赴籃田取妻子到江陵喜寄>

형산[荊山] 형산은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으로 옥(玉)이 나는 명산이다.

형산[衡山] 형주(衡州)에 있는 남악(南岳)으로, 일찍이 한유(韓愈)가 산양(山陽)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다가 이곳을 경유하면서 시를 지었다.

형산왕[衡山王] 회남려왕(淮南厲王) 유장(劉長)의 아들이며 회남왕 유안의 동생 유사(劉賜)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2년에 죽었다. 문제 8년 기원전 172년 양주후(陽周侯)에 봉해지고 16년 여강왕(廬江王)에 봉해지고 경제 4년 기원전 153년에 형산왕으로 봉국이 바뀌었다. 한무제 원수 원년 기원전 122년에 반란을 획책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자살했다.

형산운자제[衡山雲自霽]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이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형악묘(衡嶽廟)에 알현(謁見)하였을 적에, 때마침 가을 장마가 들어 음산한 기운이 잔뜩 꼈으므로, 마음을 가다듬어 기도를 드렸더니 구름이 걷히고 날이 말끔히 갰다고 한다. <古文眞寶 潮州韓文公碑 註>

형산읍옥[衡山泣玉] 춘추 시대 초(楚) 나라 변화(卞和)가 형산에서 옥박(玉璞)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치자, 옥이 아닌 돌로 왕을 기만했다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 후에 다시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역시 옥이 아니라 하여 또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래서 변화가 그 옥박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였다 한다.

형상[荊桑] 뽕나무의 일종으로 오디가 많이 열린다 한다.

형새[陘塞] 지금의 하남성 탑하시 동쪽에 있는 형산(陘山)에 건설한 관문을 말한다. 전국 때 한나라 영토였다.

형석[衡石] 형석의 형은 저울이고, 석은 1백 20근을 말하는데, 진시황(秦始皇)이 매일 반드시 1백 20근의 각종 서류를 재결(裁決)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秦始皇紀>

형설[螢雪] 동진(東晉)의 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반딧불이를 주머니에 많이 잡아넣어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눈[雪]빛에 의지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이와 눈으로 쌓은 공. 고생하면서 꾸준히 학문을 닦음.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학업에 정진[苦學] 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한 것을 비유한다. 중국 동진(東晋) 때의 차윤(車胤)은 가난한 시절 얇은 비단 주머니에 넣은 반딧불이의 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은 눈(雪) 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가 있다.

형설지공[螢雪之功] 애써 공부한 보람. 형설(螢雪)은 중국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車胤聚螢], 손강(孫康)이 눈빛으로 글을 읽었다[孫康映雪]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차형손설(車螢孫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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