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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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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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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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絃手] 양민(良民)이나 천민(賤民)중에서 음악을 아는 여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현수[峴首] 양양(襄陽)의 별칭이다. 타루비(墮淚碑)로 유명한 진(晉) 나라 양호(羊祜)의 현산비(峴山碑)가 양양현(襄陽縣) 남쪽의 현수산(峴首山)에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수갈[峴首碣] 양양(襄陽)의 현산(峴山)이다. 양호(羊祜)를 추모하여 세운 비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며 양호의 덕을 추모하여 눈물을 떨어뜨리므로 타루비(墮淚碑)라 불렀다.

현수공조고[峴首空弔古]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현산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다 비감에 젖어 눈물을 흘리며 “우주가 있고부터 이 산이 있었을 터이고 지금 우리처럼 이 산에 오른 이 가운데 현인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인몰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니, 이를 생각함에 비감이 든다.”라고 하였다. <太平御覽 荊州圖記>

현수교[賢首敎] 불교의 한 종파(宗派)로 화엄종을 말한다. 중국의 중 현수(643~712)에 의하여 크게 이루어진 종파이므로 이렇게 말한다.

현수금릉[玄叟金陵] 현수는 상촌의 별호가 현옹(玄翁)이므로 상촌을 가리키고, 금릉은 경기 김포(金浦)의 옛 이름이다. 곧 상촌이 계축옥사로 삭탈관작되어 김포의 선영 밑으로 돌아와 계부(季父) 광서(光緖)의 두 칸짜리 농가에서 하루암(何陋菴)이라 편액을 걸고 거처하였던 것을 이른다.

현수단갈[峴首短碣]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었을 때의 정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백성들이 현수산(峴首山)에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는데, 그 비석을 바라보고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타루비(墮淚碑)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羊祜傳>

현수비[峴首碑]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양양(襄陽)을 다스릴 적에 현수산에 올라가 노닐면서 “우리처럼 이곳에 와서 노닐던 걸출한 인물들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지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을 하며 감개를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뒤에 백성들이 양호를 사모하여 이곳에 세운 비석을 보고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으므로 타루비(墮淚碑)라는 별칭이 있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羊祜傳>

현수풍류[峴首風流] 지금 호북성양양현(襄陽縣) 남쪽에 있는 산인데,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오(吳) 나라의 접경인 양양을 진수(鎭守)할 때 이 산에 올라 놀았는데, 그가 죽자 사람들이 그 자리에 비를 세우니 보는 자가 모두 슬프게 울어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현순[懸鶉] 메추리는 꼬리 부분에 유독 털이 없어 마치 옷이 짧거나 갈가리 찢어진 것과 같으므로, 무릇 해진 옷을 현순이라 한다.

현승[縣丞] 현령(縣令) 밑에서 경제와 사법을 관장하고 양식과 마초를 징발 및 현의 중요한 안건을 직접 심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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