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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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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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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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玄德] 삼국 시대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의 자. 그는 제갈량(諸葛亮)을 초빙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몸소 찾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를 남겼다.

현덕[玄德] 서경(書經) 순전에 “현(玄)한 덕이 요임금께 들리다.[玄德升聞]”라고 하였다.

현덕류우환[玄德類虞鰥] 우순(虞舜)이 홀아비로 있을 때에 그윽하고 미묘한 덕[玄德]이 요(堯) 임금에게 알려져서 딸을 주고 벼슬을 주었다.

현덕실저[玄德失箸] 현덕은 삼국 시대 촉(蜀) 나라 유비(劉備)의 자이다. 조조(曹操)가 천하 영웅으로는 자신과 유비밖에 없다고 하자, 유비가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는데 그때 마침 천둥이 울리자 유비가 조조에게 성인의 말을 인용하여 해명하였다고 한다. <蜀志 先主劉備傳>

현도[玄道] 노장학(老莊學)을 말한다. 도덕경(道德經) 1장에 “玄之又玄 衆妙之門”이라 하였다.

현도[玄度] 진(晉) 나라 때 사람으로 산택(山澤)에서 노닐기를 매우 좋아하고, 청담(淸談)을 즐겼던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字)이다.

현도[玄都] 현도는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현도관[玄都觀] 중국 협서성(峽西省) 장안현(長安縣) 숭녕방(崇寧坊)에 있던 수·당(隋唐)시대 도관(道觀)의 이름인데, 당(唐) 나라 문장가 유우석(劉禹錫)이 즐겨 놀았던 곳이라 한다. 유우석이 그곳에서 간화시(看花詩)를 읊었다. 장안지(長安志)에 “수 나라가 장안 옛 성에서 이곳으로 통도관(通道觀)을 옮기고 현도(玄都)로 이름을 고쳤다.”라고 하였다.

현도국[懸渡國] 나라 이름. 서양잡조(西陽雜俎) 경이(境異)에 “오모산(烏耗山) 서쪽에 현도국이 있는데 길이 험하여 줄을 타야만 넘어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현도단[玄都壇] 신선들이 수련(修鍊)하는 단(壇). 현도(玄都)에는 반고진인(盤古眞人)·원시천존(元始天尊)·태원성모(太元聖母)가 있다 한다. <枕中記>

현도도수[玄都桃樹] 현도는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관(觀) 이름인데,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10년 만에 풀려 경사에 돌아와 보니, 현도관에 이전에 없던 복숭아나무를 한 도사(道士)가 새로 많이 심어 놓았으므로, 그 복숭아나무를 당시의 권신(權臣)들에 비유하여 풍자하는 뜻으로 시를 지었는바, 그 시에 “서울 거리 뿌연 먼지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들이 모두 꽃구경 갔다 온다 말하네. 현도관 안에 있는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가 이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거라오.[紫陌紅塵拂面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裹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도심지둔[玄度尋支遁] 현도는 동진(東晉) 때의 명사였던 허순(許詢)의 자이고, 지둔(支遁)은 역시 동진 때 고승(高僧) 이름이다. 허순은 평소 산택(山澤)에 노닐기를 매우 좋아하였고, 특히 고승 지둔과는 서로 친근하게 종유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현도종도춘[玄都種桃春] 현도관은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도관(道觀)의 이름이다. 현도관에는 본디 아무런 꽃도 없었는데, 유우석(劉禹錫)이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폄척되었다가 10년 만에 풀려나 돌아와 보니, 그 동안에 어느 도사(道士)가 현도관에 선도(仙桃)를 가득 심어 놓아서 꽃의 화려하기가 마치 붉은 놀[紅霞]과 같았으므로, 유우석이 꽃구경한 제군(諸君)에게 준 시에 “장안 거리 붉은 먼지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마다 꽃구경하고 돌아온다 하누나. 현도관 안의 복숭아나무 일천 구루는, 모두가 유량이 떠난 뒤에 심은 거라오.[紫陌紅塵拂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동[玄同] 물아(物我)의 차이가 없음을 이른다. 노자(老子) 현덕(玄德)에 “자신의 빛을 부드럽게 하고 세속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현동이라 한다.[和其光同其塵 謂之玄同]”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서로 의기가 투합함을 이른 말이다.

현동[玄童] 이른 나이에 죽은 영특한 소년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아들 동오(童烏)가 아홉 살 때에 태현경(太玄經)의 저술을 도울 정도로 총명했는데 그만 일찍 죽고 만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法言 問神>

현두자고[懸頭刺股] 머리를 노끈으로 묶어 높이 걸어 잠을 깨우고 또 허벅다리를 찔러 잠을 깨움. 학업에 매우 힘쓰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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