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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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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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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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거[懸車] 현거속마(懸車束馬)의 준말로, 험난한 역정(歷程)을 뜻한다.

현거[懸車] 수레를 달아매고 다시 출세하지 않을 뜻을 보인다는 말. 후한서(後漢書)에 “진식(陳寔)이 여러 번 부름을 입고도 나서지 않음과 동시에 문을 닫고 수레를 매달았다.[陳寔屢徵不起閉門懸車]”라고 하였다.

현거[懸車] 재상이 늙어 퇴직한 뒤에는 수레를 달아매 놓고 다시 출입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설광덕(薛廣德)이 연로(年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나온 뒤 천자가 하사한 안거(安車)를 매달아 놓고 자손에게 전하여 영광으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 곧 치사(致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漢書 卷七十一 薛廣德傳>

현검[懸劍] 춘추 시대 오(吳) 나라 계찰(季札)의 고사.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한다.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徐) 나라 임금을 잠깐 찾아보았는데, 서 나라 임금이 계찰의 보검(寶劍)을 보고는 그것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하였다. 그러자 계찰은 마음속으로 그 칼을 그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떠났었는데, 그후 계찰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곳에 들르니 서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계찰이 “내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한 것이니, 그 사람이 죽었다 해서 내 마음을 변할 수 없다.”라 하고, 그 칼을 그의 묘수(墓樹)에 걸어두고 떠났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三十一 吳太伯世家>

현경[玄經]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가리킨다. 양웅이 좋아하는 술도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였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중에 가끔씩 문자를 물으러 오는 자들이 주효(酒肴)를 싸 들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揚雄傳下>

현경실[懸磬室] 아무것도 없는 집을 가리킨다.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노(魯)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서 마치 틀에 매달려 있는 경쇠와 같다.”고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현경자[玄卿子] 먹의 이칭.

현경초[玄經草] 양웅(揚雄)은 은거(隱居)하면서 태현경(太玄經) 초고(草稿)를 만들었다.

현경취후종조백[玄經就後從嘲白]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때에 벼락감투를 쓴 자들이 “완전히 검지 못하고 아직도 하얗다.[玄尙白]”고 조롱들을 하였는데, 여기에 기인하여 후대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漢書 揚雄傳下>

현곡[玄谷] 정백창(鄭百昌)의 호이다.

현곤[玄袞]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예복이다.

현공[玄公] 호가 현옹(玄翁)인 신흠(申欽)을 말한다.

현관[玄關] 불가(佛家)의 말. 입도(入道)의 관문을 말한다.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하는 입구를 가리킨 말로, 곧 선사(禪寺)의 궁(宮殿)에 들어가는 문이다. <運步色葉集 玄關>

현관[玄關] 현묘(玄妙)한 도(道)와 관문. 보등록(寶燈錄)에 “현관을 크게 열고 바른 눈을 유통케 한다.[玄關大啓 正眼流通]”고 하였다. 또 도를 닦는 집의 문을 지칭하기도 한다. 당시(唐詩)에 “수풀 밑에 현관(玄關)을 닫았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절[寺]을 말한 것이다.

현관[賢關] 현자(賢者)의 경지에 통하는 관문이란 뜻으로, 전하여 학문과 덕행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가리켜 말한다. 또는 태학(太學)의 뜻으로도 쓰인다.

현관동규벽[賢關動奎壁] 문운(文運)이 열리었음을 뜻한다. 규성(奎星)은 문장(文章)을 주관하고, 벽성(壁星)은 문서(文書)를 주관한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현관폐자운[玄關閉子雲] 현관은 집의 문을 말하고, 자운(子雲)은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자이다. 그가 애제(哀帝) 때에 두문불출하고 집에 꼭 들어앉아 태현경(太玄經)을 초(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漢書 卷八十七 揚雄傳>

현괘[礥卦] 양기(陽氣)가 아주 약해서 뚫고 나오려고 해도 나오지 못하는 괘상. <太玄經 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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