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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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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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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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浣花] 두보(杜甫)가 일찍이 성도(成都)의 완화리(浣花里)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그 근처에는 금강(錦江)과 완화계(浣花溪)완화교(浣花橋) 등의 경치 좋은 곳들이 있었다. 성도의 태수가 정월 10일에 출유(出遊)하였다가 419일에 완화계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다는 풍속이 전한다.

완화계[浣花溪]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이 있던 촉() 땅 성도(成都) 금강(錦江) 지류의 시냇가 이름이다.

완화계[浣花溪] 사천(四川)에 있는 시내 이름.

완화당[浣花堂] 완화당은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 옆에 있던 두보의 초당(草堂)이다.

완화락[浣花樂] 만년에 은거하는 것을 뜻한다. 완화는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에 있는 완화계(浣花溪)의 약칭인데, 두보(杜甫)가 여기에서 살았었다.

완화소갈객[浣花消渴客]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완화초당(浣花草堂)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교외의 지류(支流)인 완화계(浣花溪)에 있던 두보의 초당 이름이며, 두보 자신이 소갈증에 걸린 것으로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그의 시에 난리 겪은 성도 참담한 기상, 완화초당 역시 어찌 남아 있으리.[成都亂後氣蕭索 浣花草堂亦何有]”라는 구절과 나의 소갈증 비록 심하나, 우리 황제 수고로움 어찌 감히 잊으리.[我雖消渴甚 敢忘帝力勤]”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11 從事行 贈嚴二別駕, 14 別蔡十四著作>

완화일[浣花日] 419. 이 날 환화계(浣花溪)에서 노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성도(成都)에서 완화일이라 이른다.

완화자분[玩火自焚] 무력이란 불과 같은 것이어서 단속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이 그 불에 타게 된다.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나라 장공(莊公)이 첩에게서 낳은 아들 주우(州旴)를 너무 총애한 나머지, 주우는 방자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장공이 죽고 다른 첩에게서 난 아들 환공이 그 뒤를 이었는데, 주우는 환공을 시해하고 자기가 왕위에 올랐다. 그 후 주우는 송(), (), () 등의 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이 사실을 들은 노()나라의 은공(隱公)이 중중(衆仲)에게 주우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물으니 중증이 저는 덕으로 백성을 화합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힘으로 그리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힘으로 백성을 화합시키려는 것은 마치 엉킨 실을 풀려다가 오히려 더 엉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우는 무력만을 믿고 잔인한 짓을 하면서도 태연합니다만, 무력에 의지했다간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친근한 자들도 떠나게 되어 구제되기 어렵습니다. 무력이란 불과 같은 것이어서 단속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이 그 불에 타게 됩니다. 주우는 자기네 왕을 시해하고 백성들을 학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덕을 펼치는 데 힘쓰지 않고 힘으로 이루려 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臣聞以德和民, 不聞以亂. 以亂, 猶治絲而棼之也. 夫州旴阻兵而安忍, 阻兵無衆, 安忍無親, 衆叛親離, 難以濟矣. 夫兵猶火也, 弗戢, 將自焚也. 夫州旴弑其君而虐用其民, 於是乎不務令德, 而欲以亂成, 必不免矣.]”라고 대답하였다. <좌전(左傳) 은공(隱公) 4

완화초당[浣花草堂]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 부근에 있던 두보(杜甫)의 초당 이름이다.

완화촌[浣花村]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 서쪽 완화계(浣花溪)에 있는 마을로 당()의 시인 두보(杜甫)의 고택(故宅)이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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