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쇠의[吾衰矣] 논어(論語) 술이(述而)나는 이제 쇠로(衰老)하였다.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뵐 수 없게 되었다.”라 하였다.

오수[鰲峀] 오수는 거대한 자라 등에 실려 바다에 떠 있다는 전설상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오수[聱叟] 원결은 당 숙종(唐肅宗) 때 사람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번구(樊口)에 숨어서 호를 오수(聱叟)라 하였다. <唐書 卷一百四十三>

오수[螯叟] ()의 필탁(畢卓)이 게[]를 좋아했다 하여 그를 이르는 듯하다.

오수의[五銖衣] ()는 극히 작은 단위의 중량(重量)인데, 이는 곧 선인(仙人)이 입는 옷이라 한다.

오수전[五銖錢] 한나라 때의 화폐로 평준서(平準書)관리들이 다시 주청을 하기를 삼수전(三銖錢)이 너무 가벼워 위조하기에도 용이하다고 하면서 각 제후국과 군현들에게 오수전(五銖錢)을 주조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는 다른 한쪽면의 둘레에도 윤곽을 넣어 동전에서 동가루를 긁어 내지 못하도록 했다.”라고 했다. 이에 한무제는 원수(元狩) 5년 기원전 118, 기존의 삼수전은 폐기하고 새로 주조한 5수전을 한나라의 새로운 화폐로 통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화폐의 주조권이 군국(郡國)의 지방정부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 조정은 화폐의 관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원정(元鼎) 4년 기원전 113년 동폐의 주조권을 중앙으로 모두 귀속시키고 상림삼관(上林三官)을 두어 관장하도록 했다. 상림원 내에 수형도위(水衡都尉)라는 밑의 속관으로 종관(鐘官), 기교(技巧), 변동(變動) 등의 삼관을 말한다. 오수전은 한나라 전역에서 통용된 화폐로써 중국역사상 가장 오래 사용된 화폐로써 한나라가 망하고 나서도 7백여 년 후인 수나라 때까지 통용되었다.

오숙우[吳肅羽] 숙우(肅羽)는 오숙(吳䎘)의 자()이다. 인조 12년 명() 나라 사신 황손무(黃孫武)의 접반사(接伴使)로 가도(椵島)에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송도(松都)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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