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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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오릉[五陵] 오릉은 장안(長安)에 있는 한제(漢帝)의 능으로 곧 고조(高祖)의 장릉(長陵), 혜제(惠帝)의 안릉(安陵), 경제(景帝)의 양릉(陽陵), 무제(武帝)의 무릉(茂陵), 소제(昭帝)의 평릉(平陵)을 말하는데, 전하여 오릉이 있는 장안(長安)을 가리킨 말로, 예부터 장안에는 호유(豪遊)하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 늙은 기녀(妓女)가 옛일을 회상하며 “오릉(五陵)의 소년들이 다투어 비단 머리싸개를 주었나니, 한 곡조 마치면 붉은 비단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였다네.”라고 하여, 장안의 부유한 집 자제들의 사치스런 풍류를 묘사하고 있다.
❏ 오릉공자[五陵公子] 오릉은 한(漢) 나라 다섯 황제(皇帝)의 무덤으로, 곧 장릉(長陵; 高帝)・안릉(安陵; 惠帝)・양릉(陽陵; 景帝)・무릉(茂陵; 武帝)・평릉(平陵; 昭帝)인데, 이 무덤이 모두 장안(長安)에 있고 유협(遊俠) 소년들이 여기에 모여 놀았으므로 이들을 오릉공자라 불렀다.
❏ 오릉사[於陵士]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 진중자(陳仲子)를 가리킨다. 형 진재(陳載)가 제 나라의 공경(公卿)으로 만종(萬鍾)의 봉록을 받고 있었는데, 이를 의롭지 못하다 여겨 처자와 함께 초(楚) 나라로 옮겨 와 오릉(於陵)에서 살면서 오릉중자(於陵仲子)라고 자칭하였다. 초 나라 왕이 그를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도망쳐서 남의 정원지기를 하였다. <高士傳 卷中 陳仲子・孟子 滕文公下>
❏ 오릉유[五陵遊] 장안(長安) 북쪽에 한(漢) 나라 다섯 황제의 능[五陵]이 있었는데, 이 부근에 한 나라의 호협한 소년들이 모여 서로들 즐겼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漢書 卷92 原涉傳>
❏ 오릉중자[於陵仲子]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진중자(陳仲子)를 말한다. 귀족의 자제로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여 자기 형이 받은 녹을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먹지 않으며 자기 어머니가 만든 음식도 먹지 않고, 아내와 함께 오릉현으로 가서 자기는 신을 삼고 아내는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다. <孟子 滕文公下>
❏ 오릉호[五陵豪] 서울 부호(富豪)의 자제들을 가리킨다. 오릉은 함양(咸陽) 부근에 있는 서한(西漢) 다섯 황제의 능인데, 이곳에 능을 세울 때마다 사방의 부호들을 옮겨와 살도록 했기 때문에 이런 뜻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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