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양우[陽陓] 늪 이름. <廣韻>
❏ 양우[陽盱] 위정자가 성심으로 정사를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三國志 蜀志 郤正傳>
❏ 양운부부가[楊惲拊缶歌] 한 선제(漢宣帝) 때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죄에 걸려 폐서인(廢庶人)이 된 후로는, 죄를 받은 데에 불만을 품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살림을 일으키면서 자기 친구인 손회종(孫會宗)에게 답한 편지에 “농사짓는 일이 무척이나 수고롭기에 세시 복랍(歲時伏臘)이 되면 양(羊)을 삶아 안주로 삼고 두주(斗酒)를 마시어 스스로 위로하고, 술이 거나해지면 하늘을 우러러 질장구를 치고 노래를 들으며 즐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六十六>
❏ 양웅[揚雄] 한(漢) 나라 성제(成帝) 때의 사람으로, 자가 자운(子雲)이며, 성도(成都)에 살았다. 사람됨이 소탈하였으며, 젊어서부터 문장을 잘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임금의 부름을 받아 감천(甘泉)·하동(河東)·장양(長楊) 등을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학문을 좋아하여 양자법언(揚子法言)·태현경(太玄經) 등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글 뜻이 아주 심오하였다. <漢書 卷87 揚雄傳>
❏ 양웅인각송[楊雄麟閣頌] 한(漢) 나라 양웅이 지은 ‘조충국송(趙充國頌)’을 말한다. 인각은 기린각(麒麟閣)의 준말로, 한 선제(漢宣帝)가 조충국과 소무(蘇武) 등 공신 11인의 초상화를 그려 이곳에 걸어 놓고 기념하였다. 조충국은 선제(宣帝) 때 70여 세의 나이로 서강(西羌)의 침입을 격퇴한 명장인데, 성제(成帝) 때 다시 서강의 경보(警報)가 급해지자 옛날의 조충국을 간절히 생각하며, 당시 황문랑(黃門郞)이었던 양웅을 불러 그의 초상화 앞에서 이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였다. 이 글은 시경(詩經)의 상송(商頌)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문선(文選) 권47에 실려 있다.
❏ 양웅입성문[楊雄入聖門] 양웅이 역(易)에 비겨 태현(太玄)을 짓고, 논어(論語)에 비겨 법언(法言)을 지었다.
❏ 양웅택[揚雄宅] 글을 읽으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사람이 사는 집을 말한다. 한(漢)나라 문장가인 양웅은 성도(成都) 사람으로 조정에서 줄곧 벼슬살이를 하였으나, 초(楚)와 한(漢)이 서로 싸울 즈음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 파(巴) 땅의 강주(江州)에 살다가, 다시 성도의 비현(郫縣)으로 옮겨가 그의 선조 양계(揚季)가 남겨놓은 밭 한 뙈기와 집 한 채에 의지해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한다. <漢書 卷87 揚雄傳>
'옛글[古典]산책 > 옛글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장구곡[羊腸九曲]~양재지종[良才之種]~양저마우간불변[兩渚馬牛看不辨] (0) | 2017.06.14 |
---|---|
양자문장도이소[楊子文章道已疎]~양자토봉[楊子吐鳳]~양장[羊腸] (0) | 2017.06.13 |
양이[量移]~양자[揚子]~양자루[羊子淚] (0) | 2017.06.12 |
양원수간[梁園授簡]~양월[良月]~양유기[養由基] (0) | 2017.06.09 |
양원[梁園]~양원동설[梁園同雪]~양원사인편[楊園寺人篇] (0) | 2017.06.08 |
양오[兩螯]~양옥[梁獄]~양왕[襄王]~양왕일몽[襄王一夢] (0) | 2017.06.05 |
양양자시무지기[襄陽自是無知己]~양억[楊億]~양영몽[兩楹夢] (0) | 2017.06.02 |
양약고어구이어병[良藥苦於口而於病]~양양관[襄陽館]~양양기구[襄陽耆舊] (0) | 2017.06.01 |
양수[楊脩]~양시[楊時]~양앙[梁鴦]~양액청풍[兩腋淸風] (0) | 2017.05.31 |
양소상대[兩蘇相對]~양소전촉부전언[良宵剪燭負前言]~양손장라[楊孫葬裸] (0) | 2017.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