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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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양비[攘臂] 팔뚝을 부르걷다.
❏ 양비취옥적[楊妃吹玉笛] 양비외전(楊妃外傳)에 “귀비가 몰래 영왕(寧王)의 옥적을 불다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쫓겨났는데 이윽고 다시 부름을 받아 돌아왔다.”고 하였다. 장우(張祐)의 시에 “조용한 도원에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한가로이 영왕의 옥적을 제가 불고 있네.[小桃院靜 無人見 閑把寧王玉笛吹]”라 하였다.
❏ 양비풍[攘臂馮] 일의 가부곡직은 불고하고 인기 편승에만 관심을 둠을 이른다. 풍부양비(馮婦攘臂)
❏ 양빈불[陽濱祓] 양빈은 물의 북쪽 언덕을 가리키는데, 옛날 음력 3월 상사일(上巳日)이면 궁인(宮人)들이 모두 물가에 나가 불계를 치렀다.
❏ 양사기[楊士奇] 자는 응우(應遇), 호는 죽재(竹齋), 본관은 청주인데, 형 사언(士彦)과 함께 시에 뛰어 났다.
❏ 양사주석[揚沙走石] 모래를 휘날리고 돌을 굴린다.
❏ 양산[楊山] 안악군(安岳郡)의 진산(鎭山)이다.
❏ 양산가[陽山歌] 김흠운(金歆運)이 양산(陽山)에서 백제인과 싸우다 죽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양산가(陽山歌)를 지어 그를 슬퍼하였다.
❏ 양산난의[楊山難倚] 양산은 빙산(冰山)으로 비유된 당 현종(唐玄宗) 때의 권신(權臣) 양국충(楊國忠)을 말하고, 여름 벌레는 그가 얼음과 같은 줄을 모른 당시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에 “어떤 이들이 진사(進士) 장단(張彖)에게 양국충을 찾아가 인사하라고 권하자 장단이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그를 태산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내 눈엔 빙산으로 보일 뿐이다. 만약 해가 뜨면 여러분들이 의지하던 것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 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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