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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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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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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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사혜구백[庶脩辭兮求白] 초사(楚辭) 이소(離騷)중화(重華 순임금의 이름)에게 나아가 글을 올리리라[就重華而陳詞]”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즉 굴원(屈原)이 순임금께 글을 올려 의심난 것을 물어서 스스로 도를 깨닫고자 했던 데에 비유한 것이다.

서수음[犀首飮] 서수는 호아장군(虎牙將軍)과 유사한 상고 때의 벼슬 이름인데, 전국시대 위() 나라 공손연(公孫衍)이 그 벼슬을 하였다 하여 그를 가리킨다. 당시의 유세가(遊說家) 진진(陳軫)이 공손연을 연((() 세 나라의 재상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계책을 말해주기 위해 그를 만났을 때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까?”하자, 대답하기를 할 일이 없습니다.”라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七十 陳軫傳>

서시[西施] 서시는 춘추(春秋) 때 월() 나라 미녀의 이름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패한 뒤에, 그의 모신(謀臣) 범려(范蠡)가 서시를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자, 부차가 서시에게 혹하여 관왜궁(館娃宮)을 짓고 갖은 향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오 나라는 정사가 어지럽게 되어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부차가 서시를 고소대(姑蘇臺)에 두고는 무척 총애했으므로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서자(西子)라고도 한다.

서불[徐市] () 나라 때의 방사(方士)로 진 시황(秦始皇)을 위하여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명을 데리고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을 구하려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서불불환[徐市不還] 서불와 안기생(安期生)은 모두 진() 나라 때의 방사(方士)이다. 시황(始皇)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고 서시를 삼신산(三神山)에 보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자(使者)를 해중(海中)으로 보내어 안기생을 만나려 하였으나 풍랑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史記 秦始皇本紀, 列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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