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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롱호구시[紗籠護舊詩] 당 나라 왕파(王播)가 일찍이 빈천하여 절에 가서 기식(寄食)하고 있었을 때 중들이 이를 미워하여 식사 종을 식사 후에 울리므로, 왕파가 그 뜻으로 시를 지어 그 절에 남겨 두었었는데, 그 후에 파가 귀히 되어 그곳을 다시 찾으니, 그 시가 모두 비단에 싸여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尙友錄>

사롱호상인[紗籠護像人] 재상(宰相)의 위치에 오를 사람을 말한다. 재상이 될 사람은 명사(冥司)에서 반드시 그의 상()을 세우고 사롱으로 이를 보호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사룡[士龍] 사룡은 진() 나라 문인 육운(陸雲)의 자이다. 그는 시문에 능하여 형인 육기(陸機)와 이륙(二陸)으로 병칭되는데 순은(荀隱)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운간 육사룡(雲間陸士龍)’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사룡[射龍] 이 태조의 조부인 도조(度祖) 이춘(李椿)이 백룡(白龍)과 흑룡(黑龍)이 싸울 때에 흑룡을 활로 쏘아 죽였으므로, 그곳의 연못을 사룡연(射龍淵)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燃藜室記述 卷1 太祖朝故事本末>

사루[謝樓] 남조 제()의 시인 사조(謝朓)가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부임해서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앞 산의 경치를 감상하였으므로, 후대에 이 누대를 사공루(謝公樓), 사루(謝樓) 혹은 북루(北樓)라고 일컬었는데, 일반적으로 시흥이 도도하게 우러나는 정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집은 청산에 가까우니 사조와 같고, 문 앞에 드리운 푸른 버들 흡사 도잠일세.[宅近靑山同謝脁 門垂碧柳似陶潛]”라는 표현이 있다. <李太白集 卷24 題東溪公幽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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