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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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무릉인의운운대[茂陵仁義云云對] 무릉(茂陵)은 한무제(漢武帝)이다. 무제가 조정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내가 이러이러하려 한다.”라 하니, 급암(汲黯)이 나서며 “폐하께서 안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경으로 인의(仁義)를 베풀려 하시니 어찌 요순(堯舜)이 정치를 본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 무릉제주[茂陸題柱] 무릉은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만년(晩年)에 살았던 곳으로, 이후 사마상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사마상여가 처음에 촉(蜀) 땅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향할 적에,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시를 적어 놓기를 “화려한 고관의 수레를 타지 않으면 이 다리를 건너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華陽國志 蜀志>
❏ 무리간화[霧裡看花] 두보(杜甫)의 시에 “봄 물결에 배를 띄우니 하늘 위에 앉은 듯 늙은이 꽃구경이 안개 속의 그림일러라.”라고 하였다.
❏ 무마[舞馬] 명황잡록(明皇雜錄)에 “임금이 말 1백 필을 뽑아 춤을 가르쳤는데 좌우부(左右部)로 분류하여 각기 ‘모가(某家)의 교마(驕馬)’라는 명칭을 붙였고 그 곡(曲)은 ‘경배악(傾柸樂)’이라 하여 10곡이나 된다. 말들에게는 다 금수(錦綉)로 옷을 지어 입히고 금(金)으로 고리[環]를 만들어 갈기 위에 장식했다. 풍악이 시작되면 말들이 머리를 들고 꼬리를 치면서 종(縱)으로 횡(橫)으로 음절(音節)을 맞췄다. 또 삼중(三重)의 목탑(木榻)을 설치한 다음 말들을 그 위에 올려놓고 빙빙 돌면서 그 묘(妙)를 더욱 다하게 했다. 안녹산이 입경(入京)하여 수십 필을 범양(范陽)으로 몰아갔고, 녹산이 패한 뒤에는 전숭사(田崇嗣)의 군(軍)으로 들어갔는데, 춤추는 재주를 가진 줄은 알지 못했다. 하루는 큰 잔치를 베풀고 풍악이 시작되었다. 말들이 풍악 소리를 듣고 춤을 추자 말 다스리는 사람[廐人]이, 요괴(妖怪)스럽다 하여 쳐서 죽기에 이르렀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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