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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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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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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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전[太顚]  당(唐) 나라 때의 중인데, 한유(韓愈)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서로 왕래하며 교분(交分)이 있었다. 한유가 조주 자사로 폄척되어 있을 적에 태전이라는 중이 썩 위인이 훌륭하므로 그를 불러서 같이 노닐고 또 서로 왕래도 하였으며, 그 후 조주(潮州)를 떠날 적에는 그에게 의복(衣服)을 남겨주고 작별을 하였다 한다.

태정[台鼎]  높은 벼슬.

태중[太中]  진(秦)나라 때 설치했던 태중 대부(太中大夫)로, 논의(論議)를 관장하였다.

태중대부[太中大夫]  진나라가 설치하고 한나라 따른 관직으로써 조정의 공론과 대응하는 황제의 고문이다. 평시에는 일정한 직무가 없다가 황제의 조명이 있으면 활동했다. 궁중에 기거하면서 직무를 수행했으며 명목상으로는 낭중령(郎中令: 후의 광록훈光祿勛)의 속관이었으나 실제로는 광록훈의 지휘를 받지 않았던 황제의 직접 지시를 받는 고급참모였다. 황제의 곁에서 명을 받드는 중요한 직책으로써 봉록은 1천석으로 급사중(給事中), 시중(侍中)으로 불리며 황제의 측근에서 보좌했기 때문에 권력이 매우 컸다.

태중대부[太中大夫]  태중대부는 한(漢) 나라 육가(陸賈)를 가리킨다. 주발(周勃) 및 진평(陳平)과 합세하여 여씨(呂民)를 일망타진한 뒤에, 진평으로부터 노비 1백 인과 거마(車馬) 50승(乘)과 돈 5백만 전(錢)을 받아 공경(公卿)들과 연음(宴飮)을 즐겼는데, 이와 관련하여 진(晉) 나라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 “육가는 느긋하게 노닐면서 연음을 한껏 즐겼다.[陸賈之優游宴喜]”는 말이 나온다. 또 육가가 천금(千金)을 꺼내어 다섯 아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내가 너희들 집에 들르면 인마(人馬)와 주식(酒食)을 극진하게 대접하도록 하라. 나는 열흘을 기한으로 들르는 집을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3 陸賈傳>

태증생[太憎生]  전등록(傳燈錄)에 이르기를 “남천(南泉)이 자리에 앉아있을 적에 한 중이 공수(拱手)를 하고 서있자, 남천이 말하기를 ‘매우 비루하다.’고 하더니, 그 중이 다시 합창(合掌)을 하자, 남천이 말하기를 ‘매우 가증스럽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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