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중산[中山] 술 이름이다. 수신기(搜神記)에 “적희(狄希)는 중산(中山) 사람인데 천일주(千日酒)를 만들어 그것을 마시면 천 일을 취한다.”고 하였다.
❏ 중산[中山] 한 잔만 마시면 1천일 동안을 취한다는 중산에서 나는 술을 가리킨 말이다. 박물지(博物志)에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취해서 죽은 듯이 쓰러지자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만 알고 장례를 치렀는데, 3년 만에 그 술집에서 그 집을 찾아가 무덤을 파보니, 그제야 술이 깨었다.”라고 하였다.
❏ 중산[仲山] 중산은 한 고조(漢高祖)의 형 중(仲)이 살았던 곳이다.
❏ 중산[中散] 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을 가리킨다. 한때 위(魏) 나라에 벼슬하여 중산대부(中散大夫)가 되었으나 그만둔 뒤로는 죽림 속에서 청담(淸談)을 즐기며 벼슬하지 않았다. 그는 대장장이의 풀무질을 좋아하여 벗 향수(向秀)와 더불어 마주앉아 풀무질을 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 중산국[中山國] 전국시대 때 지금의 하북성 정현(定縣)과 당현(唐縣) 일대에 있었던 이족(夷族)의 제후국으로써 위나라 위문후(魏文侯) 19년 기원전 406년 위나라의 장수 악양(樂羊)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영토는 위(魏)나라에 편입되었다. 후에 중산국의 후손들이 원래의 위치에서 서쪽인 지금의 하북성 평산현(平山縣) 경내인 영수(靈壽)라는 곳에 나라를 다시 세워 명맥을 유지했으나 기원전 296년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그 영토는 조나라에 편입되었다. 위문후의 명을 받아 악양이 중산국을 정벌할 때 중산국의 군주가 악양(樂羊)의 아들을 죽인 후 끓여 만든 인육탕을 보내자 그 국물을 마시고 중산국을 정벌한 이야기가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 실려있다.
❏ 중산방만낙양서[中山謗滿樂羊書] 전국 시대 위(魏)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을 쳐서 3년 만에 그를 함락시키고 돌아와 문후(文侯)에게 보고하자, 문후가 상자에 가득찬 방서(謗書)를 보이니, 악양이 재배(再拜)하면서 “중산을 격파한 것은 신(臣)의 공이 아니라 임금의 공입니다.”라고 하며, 그 많은 중상의 투서를 받고도 임금이 끝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다. <史記 卷七十一 甘茂傳>
❏ 중산의갈부[中山衣褐夫] 중산은 지명으로 품질 좋은 붓을 생산하던 곳이고, 의갈부란 털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토끼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옛글[古典]산책 > 옛글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신[重身]~중심동소락[衆心同所樂]~중씨[仲氏]~중앙정색[中央正色]~중양[重陽] (0) | 2020.10.06 |
---|---|
중성[中星]~중성[中聖]~중소운망서[重霄霣望舒]~중수[中壽]~중승[中丞] (0) | 2020.10.05 |
중선[仲宣]~중선금[仲宣襟]~중선등루[仲宣登樓]~중선루[仲宣樓] (0) | 2020.10.05 |
중서군[中書君]~중서삼책[仲舒三策]~중서자[中庶子]~중석[重席]~중석몰촉[中石沒鏃] (0) | 2020.10.05 |
중산참방[中山讒謗]~중상모략[中傷謀略]~중상서[中尙書]~중상지기[仲翔知己] (0) | 2020.10.05 |
중맹유상[衆盲喩象]~중묘[衆妙]~중방제결[衆芳鶗鴂]~중보잠모교탈진[仲父潛謀巧奪秦] (0) | 2020.10.05 |
중루점괴후[中壘占乖候]~중류격즙[中流擊楫]~중류공석위산하[中流空惜魏山河] (0) | 2020.10.05 |
중려[重黎]~중련[仲連]~중련지도해[仲連之蹈海]~중령군[中領軍] (0) | 2020.10.05 |
중랑원[中郞願]~중랑지절[中郞持節]~중랑초미금[中郞焦尾琴]~중랭[中冷] (0) | 2020.10.04 |
중도관[中都官]~중동[重瞳]~중동[仲冬]~중랑녀[中郞女]~중랑아대[中郞阿大] (0) | 2020.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