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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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조매[調梅]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삼으면서 “만일 국맛을 맞춘다면 너는 소금이요 매실이니라.[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하였는데, 짠 소금과 신 매실(梅實)이 국의 조미료이므로 정승의 업의 뜻으로 쓰여진다.
❏ 조매계[曹梅溪] 매계는 조위(曹偉)의 호. 조위는 조선조 성조 때의 문신. 글씨와 시문에 능했다. 저서에는 매계집(梅溪集)이 전해진다.
❏ 조맹[趙孟] 조맹은 진(晉) 나라의 경(卿)이다.
❏ 조맹견[趙孟堅] 송 나라 말기의 은사(隱士). 호는 이재(彝齋). 그는 송 나라 말기에 한림 학사 승지(翰林學士承旨)를 지냈고, 서화와 시문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지절(志節)이 높기로 유명하였다.
❏ 조명시리[朝名市利] 명예는 조정에서, 이익은 저자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격에 맞는 곳에서 하라는 말이다.
❏ 조모관녕[皁帽管寧] 삼국 시대 위(魏)의 명사 관녕(管寧)이 항상 검은 모자를 쓰고, 80세가 넘도록 50여 년 동안을 항상 목탑(木榻)에만 꿇어앉았었으므로, 그 목탑 위의 무릎 닿은 곳이 모두 구멍이 뚫리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十一>
❏ 조모벌묵수[操矛伐墨守] 식견이 뛰어난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35 정현전(鄭玄傳)에 “임성(任城) 하휴(何休)가 공양(公羊)의 학문을 좋아하여 마침내 공양묵수(公羊墨守)·좌씨고황(左氏膏肓)·곡량폐질(穀梁廢疾)을 저술하였는데, 정현이 발묵수(發墨守)·침고황(鍼膏肓)·기폐질(起廢疾)을 지었다. 하유가 그 글을 보고 감탄하기를 ‘강성(康成)이 내 집에 들어와 내 창을 잡고서 나를 친단 말인가.’하였다.” 하였다.
❏ 조문기관[詔文記官] 수향리(首鄕吏)를 일컫는 말이다.
❏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조문민[趙文敏] 문민은 원 나라 조맹부(趙孟頫)의 시호이다.
❏ 조문석사[朝聞夕死] 도(道)를 알면 곧 죽어도 유감이 없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하였다.
❏ 조문왕[操文王] 조조(曹操)는 후한(後漢) 말기의 역신이었으나 당시에 그를 주문왕(周文王)에 비유했던 일을 가리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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