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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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위족[衛足]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십칠년(十七年)에 “제(齊) 나라 대부(大夫) 포견(鮑牽)이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자, 공자(孔子)는 이에 대하여 평하기를 ‘포장자(鮑莊子)의 지혜는 해바라기만도 못하다. 해바라기는 오히려 잎으로 태양을 가려 제 발인 뿌리 부분을 호위한다.’했다.”하였다. 이 때문에 해바라기를 ‘발을 호위한다.[衛足]’고 이르게 되었다.
❏ 위족불여규[衛足不如葵] 좌전(左傳) 성공(成公) 17년에 “경극(慶克)이 성맹자(聲孟子)와 간통한 사실을 안 포장자(鮑莊子)가 이를 국무자(國武子)에게 고하니 국무자가 경극을 꾸짖었다. 이를 안 경극의 부인이 국무자에게 참언을 올렸으므로 포장자가 다리를 끊기는 형벌을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공자가 ‘포장자의 지혜는 해바라기만 못하다. 해바라기는 충성을 해도 오히려 그 뿌리[足]를 보호하니까.’했다.”하였다.
❏ 위종석피양광발[危踪昔被佯狂髮] 은(殷) 나라의 임금인 주(紂)가 무도(無道)하자 기자는 간하였으나 듣지 않으니, 이에 거짓 미쳐 머리털을 풀어 늘어뜨리고 종이 되었다. <史記 卷三十八 宋微子世家>
❏ 위주삼곡용[魏犨三曲踊]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8년 하 4월 조(條)에 “진 문공(晉文公)이 초 나라와 성복(城濮)에서 싸울 적에 조(曹)에 들어가서는 조에서 희부기(僖負羈)를 등용하지 않은 데 대한 죄를 따지고, 군사들에게 희부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서, 지난날에 희부기에게 받은 은혜를 갚았다. 그러자 위주와 전힐이 이에 노해 희부기의 집을 불태웠는데, 위주가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진 문공이 위주와 전힐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위주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사신을 보내어서 상황을 살펴보게 하고 위주가 병들었으면 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위주가 가슴의 상처를 싸매고는 사자를 만나서 ‘임금의 위령에 힘입었는데 어찌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하면서 삼백 번을 멀리 뛰고 삼백 번을 높이 뛰었다. 이에 진 문공이 위주는 죽이지 않고 전힐만 죽인 다음 군중에게 조리를 돌렸다.”하였다.
❏ 위주환완적[爲酒宦阮籍] 진(晋)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이 매우 술을 좋아하여, 보병교위영(步兵校尉營)에는 술 3백 석을 저장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보병교위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晋書 卷四十九>
❏ 위주환유치완적[爲酒宦遊嗤阮籍] 진(晋)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이 매우 술을 좋아하여, 보병교위영(步兵校尉營)에는 술 3백 석을 저장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보병교위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晋書 卷四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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