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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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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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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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龍城] 남원(南原)의 옛 이름이다.

용성[龍城] 함경도 경성(鏡城) 북쪽 30리 지점에 있다.

용성[容成] 거울을 이른다. () 나라 때 사공도(司空圖)의 용성후전(容成侯傳)에서 온 말이다.

용성[墉禜] 여자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한다.

용성걸교문[龍城乞巧文] ()의 유종원(柳宗元)이 걸교문(乞巧文)을 썼는데, 용성(龍城)은 곧 유주(柳州)를 말한다. 전하여 훌륭한 문자를 말한다.

용성위계[龍城爲界] 용성은 지금의 수성(輸城)으로, 태종 때에 경원(慶源)에 부()를 설치하고 동북 방면을 경영하였는데, 세종 때에 여진족의 내습(來襲)이 그치지 않자 경원부를 용성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다.

용손[龍孫] 용손은 용녀(龍女)의 후손이라는 고려의 왕씨(王氏)를 가리킨다.

용손[龍孫] 준마(駿馬)의 별칭이다.

용수[龍樹] 불멸(佛滅) 700년에 남천축(南天竺)에서 난 보살(菩薩). 마명(馬鳴)의 제자인 가비마라존자(迦毘摩羅尊者)의 제자. 크게 불법(佛法)을 넓혔고, 저작(著作)이 많다.

용수[用修] 양신(楊愼)의 자()이다.

용수[龍鬚] 포도덩굴의 새순을 이른다.

용수봉래삼장보[龍手捧來三藏寶] 현세(現世)에 불법(佛法)이 행하여지지 못할 때에는 용궁(龍宮)에서 불교의 경전을 수호한다고 하는데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에 가서 이것을 가지고 왔다는 전설을 말한 것이다.

용수탐주[龍睡探珠] 용이 잠든 사이에 구슬 찾음.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나오는 비유이다.

용순[龍輴] 임금의 관을 실은 수레로, 수레의 끌채에 용 그림을 그렸다.

용슬이안[容膝易安]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남쪽 창가에 기대어 교오한 마음을 부치나니, 무릎만 겨우 들여놓을 작은 집도 편안한 줄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고 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겨우 무릎을 용납할 정도의 조그만 방이라도 편안하다는 뜻이다.

용시[龍漦] 용시는 즉 용의 침[涎沫]이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 나라가 망할 무렵에 두 신룡(神龍)이 대궐의 뜰에 내려와 있다가 용은 죽고 그 침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독()에다 수장해 두었었다. 그 후 하 나라가 망하자 그 독이 주 나라로 넘어왔으나 감히 누구도 열어보지 못하였고, 여왕(厲王)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열어보니 그 침이 뜰에 흘러내려 현원(玄黿)이 되었는데 후궁(後宮)의 동첩(童妾)이 지나다가 그것을 보고 난 뒤에 임신하여 포사(褒姒)를 낳았다.”고 하였다. 뒤에 포사는 주 유왕(周幽王)의 총희(寵姬)가 되었는데 결국 그로 인하여 주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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