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부도래[龍馬負圖來] 복희(伏犧) 때 용마(龍馬)가 하수(河水)에서 도서(圖書)를 짊어지고 나왔는데 이것이 역()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되었다.

용만[龍灣] 의주(義州)의 옛 이름이다.

용매[龍媒] 준마(駿馬)를 가리킨다.

용면[龍眠] () 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 박학(博學)한데다 시()()()에 모두 뛰어났다. 산수(山水)와 불상(佛像), 단청(丹靑)을 잘하였다. 용면산인(龍眠山人). <宋史 文苑傳>

용면거사[龍眠居士] 송대(宋代)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 이후 화공(畫工)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용무[龍武] 금군(禁軍)의 명칭. () 나라 금군에 좌우용무군(左右龍武軍)이 있었다.

용문[龍門]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에 있는 산. 남한강 줄기가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용문[龍門] 명망이 높은 인물의 저택을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이응(李膺)의 집을 찾아와 마루에 오르도록 허락을 받으면, 모두 용문에 올랐다.[登龍門]”고 하면서 영광스럽게 여겼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德行>

용문[龍文] 용문은 명검(名劍)인 간장(干將)의 별칭이다.

용문[龍門] 용문은 황하(黃河)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잉어가 이곳을 뛰어올라야 용()이 된다고 하는데, 사람의 출세를 비유한 말이다.

용문[龍文] 웅건한 문장(文章)이나 시를 말한다.

용문[龍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의 서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옛날에 우() 임금이 치수(治水)할 적에 이 용문산이 하수(河水)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파내었다고 한다.

용문[龍門] 후한(後漢)의 이응(李膺)이 조정이 날로 어지러워지고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때 남달리 탁월한 식견을 지녀 천하에 그 이름이 높았는데, 선비들 가운데 혹시 그의 허여와 접대를 받은 자가 있으면 용문에 올랐다는 칭호가 붙었다. <後漢書 卷六十七 李膺傳>

용문[龍門] 용문은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에 있는 나루인데 이곳은 물이 험하여 고기들이 올라오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강에서 몰려온 큰 고기떼가 용문에 모여 올라오려 하는데 만일 올라오면 용이 된다 한다.

용문[龍門] 용문은 황하의 급류가 쏟아져 내리는 협곡으로, 옛날 우 임금이 즐풍목우(櫛風沐雨)하며 홍수를 다스릴 적에 용문을 뚫었다는 기록이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에 나온다.

용문[龍門] 지금의 섬서성 한성시(韓城市) 부근으로 태원 북쪽에서 발원하여 산서성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분수(汾水)가 하수(河水)와 만나는 곳이다. 그 북쪽에 용문산(龍門山)이 있다.

용문객[龍門客] 훌륭한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용문(龍門)은 성망(聲望)이 높은 사람에게 비유한 말인데, 후한(後漢) 때 이응(李膺)이 고사(高士)로 명망이 높아, 누구든지 그로부터 한 번 접견(接見)만 받으면 세상에서 그 접견받은 사람에게 용문에 올랐다고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李膺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