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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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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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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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려[龍驪] 용맹한 장수의 별칭이다.

용루[龍樓] 대궐의 별칭. 한대(漢代) 태자궁(太子宮)의 문으로, 동궁의 처소를 뜻한다.

용릉[舂陵] 고통받는 백성을 뜻한다. () 나라의 시인 원결(元結)이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있을 때 용릉행(舂陵行)을 지어 백성의 참상을 읊었는데, 두보(杜甫)가 이 시를 읽어보고서 감격한 나머지 또 원 사군의 용릉행에 뜻을 같이하며[同元使君舂陵行]’라는 시를 지은 고사가 있다.

용릉[舂陵] 용릉은 장릉(章陵)의 이명(異名)으로,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과 생모인 구씨(具氏)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능호(陵號)이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 제일 하(第一下) 첫머리에 용릉향(舂陵鄕)의 이름을 장릉현(章陵縣)으로 개정한 뒤 대대로 요역(徭役)을 면제하고 풍패(豐沛)에 비해서 손색이 없게 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용릉[舂陵] 임금의 아들을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장사정왕(長沙定王)을 봉()하여 용릉후(舂陵侯)로 삼은 고사가 있다. <讀史方輿紀要 寧遠縣條>

용릉[舂陵] 용릉은 송 나라 주돈이(周敦頣)가 살던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의 지명으로 주돈이를 가리키며, 밝은 달[霽月]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약칭인데,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를 지으면서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한 말이다.

용릉유미화[舂陵流美化] () 나라 시인 원결(元結)이 용릉(舂陵)의 옛 땅인 도주(道州)의 자사(刺史)로 임명된 뒤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도하고는 용릉행(舂陵行)’이라는 시를 지어 목민관으로서의 결의를 피력한 고사가 전하는데, 이 시와 서문이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19에 부록(附錄)으로 실려 있다.

용린[龍鱗] 쇳조각을 결어 만든 철갑옷이 용의 비늘같다는 것으로 철갑을 뜻한다.

용림처일[容林處一] 자기 분수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뱁새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나무 한 가지에 불과하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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