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王會] 천자에게 조공하기 위하여 제후나 번국(藩國)들이 모이는 모임을 말한다.

왕회[王恢]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4년에 죽은 서한의 장군이다. ()나라 출신으로 한무제 건원 중에 민월과 동월이 서로 싸우자 그는 예장의 군사를 이끌고 회계의 군사를 거느린 한안국과 합류하여 남월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했다. 한군이 미처 민월에 이르기도 전에 민월의 장수가 그의 왕을 살해하고 항복해 왔음으로 한군은 군사를 파했다. 융노가 화친을 청해 옴으로 무제가 의견을 묻자 그는 전에 여러 번 변방의 관리로 있어 흉노의 일에 익숙하다고 하며 흉노와의 화친을 반대하고 군사를 일으켜 흉노를 정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원흥(元興) 원년 기원전 134, 둔장군(屯將軍)에 임명된 그는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흉노를 공격했으나 마읍(馬邑)에서의 작전이 실패하여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왕회가 흉노 선우의 치중을 공격하지 않고 자의로 군대를 물리친 것에 노했다. 그가 비록 힘껏 자기의 행동을 변명했으나 무제의 마음을 돌릴 수 없자 다시 승상과 태후의 도움으로도 죄를 면할 수 없었다. 무제가 그를 주살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회음훼독[王淮陰毁毒] 왕회는 송() 나라 금화(金華) 사람으로, 벼슬이 좌승상(左丞相)에 이르렀다. 그가 일찍이 주희(朱熹)를 미워하고 도학(道學)을 공박하였는데, 송 영종(宋寧宗) 때 주희 등 유학자(儒學者)들을 위학(僞學; 정의에 어그러지는 학문)이라고 몰아세우게 된 원인이 왕회에게서 비롯되었다 한다. <宋史 卷三百九十六 王淮傳>

왕회종출마읍모[王恢縱絀馬邑謀] 한 무제(漢武帝) 때에 흉노(匈奴) 선우(單于)가 한 나라를 자주 괴롭히므로 무제가 이에 대한 방책을 묻자 대행(大行) 왕회가 그들을 쳐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리하여 30만의 군대를 마읍(馬邑) 골짜기에 정돈하고 선우를 유인하여 습격하려 하였으나, 선우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달아나버림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왕회는 수모자(首謨者)로서 진격(進擊)하지 않았다는 죄로 하옥(下獄)되어 죽었다. <漢書 武帝本紀>

왕회편[王會篇]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사방의 제후(諸侯)와 사이(四夷)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기술하였다.

왕후장상[王侯將相] 제왕, 제후, 장수, 재상의 총칭이다.

왕희[王姬] 왕희는 바로 주왕(周王)의 딸을 가리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