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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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왕자안[王子安] 자안은 초당(初唐)의 문장가인 왕발(王勃)의 자(字). 그는 6세에 이미 글을 지었으며, 초당의 사걸(四傑)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저서에는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이 있다. <新唐書 文藝傳・四庫全書總目提要>
❏ 왕자유[王子猷] 자유는 동진(東晉) 때 고사(高士)인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왕휘지는 그가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 왕자응림오류가[王子應臨五柳家] 왕자(王子)는 즉 진(晉) 나라 때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 오류 선생은 도연명(陶淵明)의 호. 왕홍이 도연명을 알고 싶었으나 만날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여산(廬山)에 온다는 말을 듣고 술을 준비하여 중도인 율리(栗里)로 나가 만났다는 고사이다. <南史 卷七十五 陶潛傳>
❏ 왕자지출적[王子之出迪] 왕자는 미자(微子)를 말한다. 서경(書經) 미자(微子)에서 기자가 미자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에 지금 재앙이 닥쳐오고 있는데 나는 그 화를 받을 작정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도 남의 신하 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왕자는 어서 떠나라. 그것이 도에 합치된다.”라고 하였다.
❏ 왕자진[王子晉]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晋). 피리[笙]를 잘 불어 봉의 울음소리를 냄. 뒤에 후령(緱嶺)에서 신선이 되어 백학(白鶴)을 타고 갔다 한다. <列仙傳>
❏ 왕저[枉陼] 지금의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왕수(枉水)의 가운데 있는 섬 이름이다.
❏ 왕적향[王績鄕] 술에 취해 잠든 것을 말한다. 당(唐) 나라 왕적(王績)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취향기(醉鄕記)라는 주보(酒譜)를 저술하였다. 후세에서는 이를 인하여 ‘취향(醉鄕)’이란 의미로 쓰게 되었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王績>
❏ 왕전사벌초[王翦辭伐楚] 자신 없는 일은 착수하지 않음. 왕전(王翦)은 전국(戰國)시대의 이름난 장수로서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조(趙)・연(燕)등의 나라를 평정하고 초(楚)를 치기 위해 다시 회의를 했는데, 이때 이신(李信)은 병력 20만을 요청한 데 반해 왕전은 60만 병력이 아니면 정벌에 나갈 수 없다고 하여, 처음에 이신을 시켰다가 패하고 나서 다시 왕전을 기용하여 초를 평정하였다.<史記 卷七十三>
❏ 왕절신[王節信] 후한(後漢) 때 자(字)가 절신(節信)인 왕부(王符)가 당시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며 세상을 개탄하는 잠부론(潛夫論) 30여 편을 지었다.
❏ 왕정[王程] 왕사(王事)를 위해 분주하는 여정(旅程)을 말한다.
❏ 왕정[王鄭] 왕흡(王洽)과 정건(鄭虔). 모두 당(唐) 나라 사람으로 그림과 시문(詩文)에 이름이 높았다.
❏ 왕존애관[王尊愛官] 한(漢) 나라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험준하기로 유명한 구절판(九折阪)을 넘어다니게 되자 부모님이 주신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돌아왔는데, 그 뒤에 왕존이 자사가 되어 구절판을 넘을 때에는 마부에게 빨리 말을 몰라고 다그치며 “왕양은 효자이지만 왕존은 충신이다.[王陽爲孝子 王尊爲忠臣]”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王尊傳>
❏ 왕존질어[王尊叱馭] 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일찍이 익주 자사(益州剌史)가 되어 관할 지방을 순행하다가 공래산(邛郲山) 구절판(九折阪)에 이르렀을 때 탄식하며 말하기를 “선인(先人)의 유체(遺體)를 받들고 어떻게 이런 험한 곳을 자주 다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익주 자사가 되어서는 이 곳을 지나면서 아전에게 묻기를 “이 곳이 바로 왕양이 두려워하던 길이 아니냐?”라고 하고는, 그의 마부에게 말을 몰도록 질책하면서 말하기를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왕준은 충신이 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왕좌[王佐] 제왕(帝王)을 보좌할 사람이라는 말인데, 제갈량(諸葛亮)이 왕좌의 재주를 가지고 처음에 초가집에 누웠다가 뒤에 유현덕(劉玄德)의 간청을 받고 나와서 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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