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 저 너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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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
❏ 와당[瓦當] 와당은 고대(古代)의 궁전(宮殿)에 사용하던 기왓장 끝에 새긴 문자(文字)를 말한다.
❏ 와대고취[蛙代鼓吹] 북 치고 피리 부는 것을 말한다. 공치규(孔稚珪)의 문정(門庭) 안에 잡초를 베지 않아 개구리가 그 속에서 우는데 치규가 “내가 이것으로 고취를 대신한다.”고 하였다. <南史 孔稚珪傳>
❏ 와도[臥陶] 누워 있는 도연명(陶淵明)이라는 뜻이다. 도연명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오뉴월 중에 북창(北窓) 아래에 누워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이따금씩 스쳐 지나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태곳적 희황(羲皇) 시대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 와독서가[臥讀書架] 누워서 글 읽는 서가.
❏ 와련[媧鍊] 옛날에 여와씨(女媧氏)가 오색돌을 반죽하여 허물어진 하늘을 때웠다고 한다.
❏ 와록침창[臥綠沈槍] 두시비해(杜詩批解) 권3 중과하씨5수(重過何氏五首)의 “비 속에는 쇠갑옷이 버려져 있고 이끼엔 푸른창이 누워 있다네.[雨抛金鍞甲 苔臥綠沈槍]”에서 나온 것으로, 무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는 것이다.
❏ 와료[窪寥] 텅 비고 깊숙한 모양.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비고 깊어 그 바닥은 보이지 않고 허공에서 솔바람 소리만 들린다.”고 하였다.
❏ 와룡[臥龍] 삼국 시대에 제갈량이 젊어서 살던 곳인데, 집 위의 산 이름이 와룡강(臥龍崗)이므로 와룡 선생이라고 자칭하였었다. 제갈량의 친구인 서서(徐庶)가 일찍이 선주(先主)에게 제갈량을 소개하면서 ‘와룡’이라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 와룡[臥龍] 흔히 때를 만나지 못한 영웅을 지칭한 말. 잠복해 있는 간웅(奸雄)이라는 뜻.
❏ 와룡려[臥龍廬]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도호(道號)가 와룡선생(臥龍先生)이므로 빌어서 쓴 말이다.
❏ 와리[臥理] 누워 다스릴 만하다는 것은 급암이 회양태수에 제수되자 거절하고 인장을 받지 않자, 무제가 말하기를 “그대는 회양군수 자리를 박하다고 보는가. 내가 지금 그대를 불렀으나 회양의 관리와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지 않으니, 그대의 힘을 빌어 편히 누워 다스리고 싶다.”라고 하였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史記 卷一百二十 汲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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